역사에서 배워야
지금 한반도 정세가 마치 19세기초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말들을 가끔 듣는다. 그것은 세계로부터 동떨어진 외톨이가 되어 가는 남 북 두 정부 특히 북한의 과장된 민족주의와 스타린주의 잔재인 1인 전체주의 국가관이 결국은 주변국으로부터 더욱 고립되고있다는 현실 대문이다. 이조 말 고종은 주변열강인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사이에서 확고한 국가의 진로를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실기를 하고 말았다. 만약 그때 정부가 나라를 개방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국가를 근대화하는 길이 살길임을 믿었다면 미, 러, 영, 독일 등의 강대국과 등거리 외교로 협력을 얻고 일본과 중국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일본에 뒤지지 않는 근대화를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젼이 없었기 때문에 청에 의지하다, 러시아에 붙었다, 일본을 불러들이다 갈팡질팡하여 살길인 영세중립국의 기회마저 잃고 주변국간의 힘의 대결을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지킬 부국강병 책도 없고 세계정세를 읽지도 못하면서 없는 힘을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려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잃고 말았다. 지금 북한은 어떠한가? 또 남한은 어떠한가? 북한은 거지양반 허세부리 듯하고 남한은 실속 없이 위풍당당(威風堂堂)이다. 고종의 윤허를 받아 이민 온 하와이와 멕시코이민은 후에 일본에 의한 국권의 침탈로 조국이 없는 이민자의 길을 걸었거니와 다시 100년 후 대한민국의 여권을 가지고 미국이민에 나선 우리 재미동포들은 남한정부의 국가정체성 혼동으로 또 한번 우리 미주한인동포의 조국 관이 흔들리고, 민주평화통일(자유민주의의 신봉, 평화적 방법, 민족통일)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다. 19세기는 국가이기주의가 식민지쟁탈과 분할을 정당시하고 불란서, 독일,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차례로 조선반도와 부속도서를 넘보고 미 영도 일본의 식민지확장을 묵인함으로서 그것이 하나의 세계사조(思潮)로 그 시대를 지배했다. 9.11사태 후 세계는 테러로부터 자국과 세계를 보호하고 핵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으로 테러위험을 키우는 것을 억제하고,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도우며,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을 함께 추구하는 세계화가 시대사조(思潮)가 되였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세계에서 빈곤한 나라로 생존권이 위협받고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가 가장 제한된 나라이며 핵을 포함하는 군사력을 과시하고 테러지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21세기의 지구촌 국가들이 지향하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남한은 동족인 북한을 끌어안을 힘도 또 끌어내 세계화의 물결에 태워 지구촌을 당당히 함께 갈 지혜도 없다. 남한은 미국과의 동맹 없이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도 없고 주변국의 경제적 협력 없이는 향상은 그만두고 현 수준도 지킬 수 없다고 한다(김대중, 노무현대통령의 어록 중에서).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가와의 공조는 대 북한 공조로 마무리됨으로 동족이면서도 협상의 상대자로 6자 회담에서와 같이 북한의 상대편에 앉게 된다. 그것이 불행한 현실이지만 세계정세이니 풀어야 할 숙제다.
남한정부의 최근 논리인 균형자론, 탈 대북봉쇄 등 추상적인 언어 풀레이는 우리가 “북핵불용”이나 “평화통일”협상 테불에서 북한의 맞은편에 앉아야하는 상대방이란 점을 잊은 망발이다. 이는 남한과 북한에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과 그 상대인 4개국에 엉뚱한 오해만 부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사 온 문 희상에게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미일과 공조하여 6자회담으로 풀어 가는 것은 남한정부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강조한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조는 남한정부가 말하듯 “북 핵 불용”과 미국이 주장하는 테러근절, 민주주의확산을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 세계 핵 기득권 층을 나무랄 수도 있지만 이것이 21세기를 지배하는 사조이며 이 틀 속에서 세계사는 쓰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