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가을
푸른 하늘을 이고 누운 아름답게 펼쳐나간 들과 언덕에는 어느 듯 가을빛이 완연하다. 누러지기 시작한 콩밭과 옥수수 밭에서는 알맹이가 영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쓰르라미 소리, 풀벌레소리, 지렁이노래소리에 잎들은 떠날 준비를 하는지 스산한 바람소리로 영가(詠歌)를 합창한다. 가을! 언덕에 왕자같이 버티고 선 오크추리에서는 토실한 상수리가 살을 찌우고 잡나무사이를 비집고 올라간 머루넝쿨에서는 주렁주렁 매달린 머루가 검 자주 빛으로 익어간다. 자잘하게 자란 보리수나무엔 빨간 뽀리시가 가지가 휘도록 열려 오가는 이를 멈추게 하고 길가엔 주머니 속에 든 꽈리딸기가 초롱같이 매달려 아이처럼 천진해진 우리를 부르고 있다. 짝은 새나 짐승이 입 맟우었을 새라 머루나 뽀리시를 따 먹는 것을 금했으나 꽈리딸기만은 주머니 속에 들어있기에 청정음식이 되어 자주 마른 혀를 적셔주기 일수다. 푸른 꽈리주머니를 열면 그 속에 잘 이근 남(藍)자주색 꽈리가 속살을 들어내고 새콤달콤하게 터져 나오는 그 작은 양의 주스는 별미다. 옛 어른들이 참새구이로 한잔하며 “황소 등에 앉은 참새가 네고기 한 근보다 내고기 한 점이 더 낫다”했다던가? 꽈리딸기의 맛이란 게 그 말과 비슷하게 별미라고 할 것이다. 가을에는 들판이나 산이나 어디를 가던 느긋하게 풍요롭다. 일생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저장하여 감추기 전에 안으로-안으로 빼곡하고 안으로-안으로 충만해지는 가을! 그런 풍정(風情)과 그러한 가르침이 우리로 하여금 이 계절에 상달을 두고 하늘에 감사하며 시절을 찬미하여 왔나보다. 고국에서는 옛사람들의 영고(迎鼓)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다 잊었으니 이민의 나라 제2의 고토에서 북을 울리고 춤을 출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