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온 방 씨(chai vang)
9월 17일과 18일 시카고 트리뷴지에는 근 1년 전 위스콘신 주 북쪽에서 일어난 사냥터살인사건의 재판에 대하여 상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양측의 상반된 주장같이 36세의 젊은 라오스에서 이주한 사냥꾼의 정당방위였는가 아니면 소수민족에게 불이익을 주기에 충분한 백인만의 배심원들에 의한 잘못된 판정이었는가에 대하여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배심의 합의가 발표된 이상 국외자들의 논쟁거리가 될 수는 없으나 아직까지도 재판관에 의한 형의 선고는 물론 상급심에의 항소도 배제할 수 없음으로 좋던 나쁘던 한동안 우리들의 관심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우리와 같이 아시아의 이민자이고 이민자들이 겪는 여러 가지 사회적 스트레스와 일부 주류 시민들로부터의 악의적 또는 무의식적 차별에 민감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소수 아시아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염려가 된다. 낫선 미국 땅에 와서 아무리 친절하고 평등한 사회라 하더라도 이민초기의 불안했던 체험들, 그것이 차별의 실체였던 스스로의 과잉반응이었던 간에 그 때는 두렵고 당황스러웠던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필자도 36년이라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활동시기를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직도 때로는 손님 아니, “더부사리”사는 소수인종으로 쓰레기 취급하는 무지한 악한을 맛났을 때 원망, 분노, 무력감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분노와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르는 방 씨의 고립무원(孤立無援)한 무력감, 수치감, 위기감 이런 혼란스런 상태가 그의 판단이나 행동을 지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9명의 백인들이 차 두 대로 따라오면서 무시하는 말을 하고 숲속에는 자기를 도와줄 아무도 없다고 느끼었을 때, 방의 누이가 “왜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는가?” 개같이 죽을지도 모르는 데 “그는 푸라이드를 가지고 해냈으며 자기는 그것이 또한 자랑스럽다”고 울부짖는 말에 가슴이 찡해 온다. 정말 백인 배심원들이나 판사가 이런 이민자의 혼란스런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살인을 처벌해야지만 9대1로 열세한 고양이 앞에 쥐가 된 심정이었을 그의 불상한 처지도 감안하고 미국편이 되어 월맹과 싸워준 몽족의 공적도 감안 너그러운 판결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