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우리국기
태극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박영호가 배 위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고종임금이 창안한 것을 영국인 선장 제임스의 도움을 받아 제작하여 타고 간 배와 호텔에서 사용하였다는 당시 박영호 인터뷰기사가 실린 잡지가 발견되었다 함은 이미 다른 칼럼에서 논술한 바 있다. 그 당시 청(淸)나라가 사용하던 중심(中心)색 황룡(黃龍)기를 동방의 상징인 청룡(靑龍)으로 번안하여 조선의 국기로 삼으라는 마건충의 건의를 무시하고 고종임금자신이 태극을 옥색바탕에 그린 태극기를 우리국기로 삼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청나라가 우리의 변방 여진(女眞)에서 일어나 그 장자(長子)격인 조선을 압박하여 신속(臣屬)시키려드는데 반항하고 동이(東夷)전래의 태극사상을 선양, 위태한 지경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심기가 숨어있을 것 같다. 태극은 천지, 음양이 분화하기 전의 원상(圓相)에 두 머리와 꼬리를 가진 1음(陰) 1양(陽)에 4방(方-동서남북)), 4상(象-건곤乾坤/하늘땅, 감이-坎離/물불)를 네 모퉁이에 두어 우리 나라 국기를 아주 과학적이고 쉽게 그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태극사상은 동이의 옛 친척인 복희씨(6천년 전)도 썼으니 민족의 시작부터 음양, 4상, 8내지 64괘의 조화(造化)로 사람을 항상 이롭게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제왕(帝王)의 중심이며 도(道)의 시작이었다. 태극은 우리의 많은 유적과 유물에서 자주 보며 특히 대문, 홍살문, 갓집 등 생활주변에서 자주 보던 것으로 그 색깔과 모습도 좋고 간단하게 제작하고 설명할 수 있어 민족의 깃발이 되기에 너무도 좋다. 항간에 고루하다거나 복잡하고 분단을 상징한다며 태극기를 버리고 반도(半島)기를 쓰자는 단견(短見)도 있으나 이는 우리국기에 숨은 민족정기와 아름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