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서의 낭만
시카고의 한 올드 타이머시고 동포사회 지도자이신 변 선배의 초청을 받고 교외에 있는 그 분의 9만여 평 되는 농장에서 주말 한나절을 보내게 됐다.
시카고에서는 시간 반 여를 달려와야 되겠지만 필자의 집에서는 30여 분이면 족한 거리에 있었다.
일리노이 서북쪽 말랭고 지역에 위치한 농장은 맥헨리 카운티 도로 A33위에 있어 찾아가기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 초행자에겐 지나치기 십상이어서 필자도 두 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결국은 전화를 걸어 안내를 받고야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옥수수ㆍ콩ㆍ깔(사료) 등이 풍성하게 자라는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며, 깊게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로 자연을 타고 오르내리며 직선으로 뻗어간 도로는 간밤의 비로 샤워를 하여 한결 신선했다.
“저 높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 두어 점- 내 어릴 적 월산 위로 날던 그 구름 닮아- 종채야, 창규야, 부르며 순복이 놀라게 휙- 달려 지나치던- 미류나무 잎 날개짓 소리 비켜 들리는 쓰르라미 노래-매 암- 아! 그 시절이 눈에 아련하다, 가슴 저린다-”
농장에 들어서며 눈에 들어오는 풋고추ㆍ열무가 옛 시골을 닮았는 데 이민의 서러움으로 찌든 나이테가 깊숙한 선후배들에게 후참한 필자 또한 자연스레 한판이 됐다.
고향 땅 농촌에서 옛 어른들이 쉴 참에 나와 법석(法席)을 떨 듯이 술이며 고기며 즉석에서 딴 무공해 채소가 소담하니 아니 먹고 어이 하리. 이 농장에서는 꿀벌을 치는 탓으로 꿀양주(꿀에 양주를 탄)라는 홈 메이드 칵테일 잔 속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꿀벌들이 자살이라도 할 양 날아들어 허우적대 질색이었지만 그래도 맛과 흥취는 그만이었다.
이 아침 등산 길에 필자가 따간 퍼피 버섯도 즉석 부침이가 돼 안주로 올랐는 데 그 또한 별미였다.
홍진(紅塵)에 지친 세상 다 잊고 오늘은 신선되어 고누판이라도 벌렸으면, 했지만 또 시카고 한인회 재판 이야기가 나와 귓가에 먼지가 쌓이고 저녁 약속도 있어 미진한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아쉬운 대로 낭만이 흐르는 좋은 시간, 함께 잘 놀게 해주신 분들에게 인사하고는 “고향의 꿈”을 흥얼흥얼 대며 다시 차를 몰아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