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기행 II (라사로 가는 길 얄롱강을 따라, 2017.5.6. 림관헌)
티베트 기행 II (라사로 가는 길 얄롱강을 따라, 2017.5.6. 대지 림관헌)
5월22일 오전8시15분, 성도(쳉도)발 차이나 에어 편으로 1시간55분 후에는 천년의 도시 천축, 천독 사람들의 수도 라사에 도착한다. 비행기탑승완료시간 만료직전에 젊은 청년남녀 둘이서 두리번거리며 긴장한 듯 바삐 올라와서는 그들을 위한 듯 남아 있던 두 자리를 마저 채워버렸다. 둘 다 우리와 같이 노랑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약간의 영어를 이해해서 혹시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카투만두에 사는 이들은 학교는 졸업하고 비지네스 차 중국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중이란다. 카두만두는 우리의 목적지 라사에서도 3시간을 더 가야 도착하는 자기들의 홈 랜드라고 한다. 라사에 오는 도중 내내 바로 옆자리에 안자 정다운 오누이 같이 자기들 말을 하며 웃는 그들을 보니 47년 전 우리가 처음으로 나라밖인 미국에 오면서 미지의 타국을 아무 두려움도 없고 거칠 것도 없이 즐겁기만 하던 그 시절, 모든 것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듯이 이들 젊은이들도 마냥 행복하게만 보여 나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그러듯이 지난 2000년간의 세계문화사는 지식이 있으나 그 이 전에 대하여는 배운 것도 없고, 막연히 서양위주의 소위 과학적 역사관을 이해 할 뿐, 지금의 조국, 그 고유문화에 대하여는 알려고, 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족이라고 자처하는 중국주류들의 서쪽 개척지인 쳉두에서 옛 변방의 역사의 흔적을 알아 볼가하여 연변출신 조선족가이드(17년 베터런)에게 이곳에 상고사 유물 유적을 모아 논 박물관이 있는지 물었더니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갑골문에 대하여 읽은 바는 있지만 그 역사적 신빙성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고 했으며, 겨우 요즈음 중국정부가 급조한 3조당에 대하여는 아는 듯 했으나 별로 관심도 없고, 그 전설적 역사관에 대하여는 중국의 국민계몽수단정도로 이해하면서, 그것들의 역사적 유물, 유적으로 증거가 되는 전시물에 대하여는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파미르고원과 설산이 비교적 낮설지 않고 가까운 라사에 가서는 만 2천 년 전 양자강 원류를 따라 동남쪽인, 지금의 중원남쪽으로 나려오면서 남긴 동남 중국의 조상인 청궁(BC10,000)씨의 생활 흔적인 석기, 골각 등을 모아 논 박물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젊은이들의 나라 네팔의 서울, 설산아래 있는 수도, 킥더므 (캐트만드)는 영어를 쓰는 인 도와 중국어를 쓰는 중공과 사이에 있음으로 그곳 지식층 젊은이들은 이들과 같이 네팔 말과 영, 중어를 모두 구사하며, 아무런 두려움이나 긴장감 없이 저렇게 밝게 사는 것을 보면, 남북이 갈려, 늘 뻑뻑하게 서로 불신하며 사라가는 우리조국, 한반도를 생각하니 답답해지는 것을 어찌할까? 이들 두 젊은이들과 세상사를 주고 받다보니 어느덧 라사에 도착하였다. 라사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해방한 중국영토로 편입되었고, 지금은 중국 땅이지만, 5천년의 긴 세월을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 풍습과 문화를 지켜온, 한때는 중국과 로마사이에서 패권을 다투던 독립국의 후예들이 사는 곳이다. 마치 같은 중국이라면서도 타국의 세관을 들어서는 것 같은 삼엄함이 여행객을 좀 어늘한 기분으로 만들고, 긴장하며 입국수속과 세관검사를 받아야 했다. 조금 전, 우리 옆 좌석에 있던 네팔의 젊은이들 짐을 챙겨가지고 다시 환승절차를 받기 위하여 다른 창구로 황급히 사라져들 같다. 인천에서 여행사 가이드가 준비해준 라사입국서류가 잘 못되어 필자만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입국서류양식을 받아 다시 바꾸어 쓰고야 기다리는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우리일행은 이렇게 라사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와 ㅇㅇ여행사팻말 앞에 늘어서서 하얀 인조비단 천으로 된 행운의 목도리를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고산병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고 나니 정말 어려울지 모르는 고산지역 답사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긴장감이 약간의 두려움까지 안겨주었다.
라사에는 티베트 땅 2000km를 흘러-흘러와서는 다시 남쪽 인도 땅 1000km흘러가는 야롱(Yalung)장프(Tsangpo)강은 강폭이 대단하여 들판 같고, 건기에는 샛강들이 모였다 갈라지듯 하지만 우기인 5ㅡ9에는, 밤에만 오는 비와 설산의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강폭이 물로 차서 티베트의 젓줄이 되어 준다. 이 얄롱강은 티베트의 어머니 강으로 불리며 히말리아산맥을 이루는 설산무리 사이를 동서로 달려 내려와서는 부탄을 외 둘러 다시 남쪽으로 브라마프트라강이 되어 간지스강 등과 삼각주를 일우며 합류하여 벵골 만으로 들어가는 아마 인류의 가장 오래고 신성한 젓줄이며 아마도 파미르의 네게 강의 시원과도 맏 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온난화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아마도 이곳의 고산특수지형 탓으로 티베트고원의 사막화가 더 심각하게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직권으로 이루어지겠지만 메마른 강가에서부터 조림한 흔적이 보이고 푸른 나무사이로 밀인지 보리인지 모르지만 수유차와 함께 티베트인의 주식이 되는 미수가루를 공급하는 밭떼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호텔로 가는 길옆에 잠깐 들린 오래된 물레방아 간에서는 큰 맷돌을 물의 힘으로 돌리는데, 미수가루가 반은 그릇 안으로 반은 흙먼지와 함께 날아가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주인의 기대와 체면도 있고 해서 포장해 논, 한 봉지를 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가이드에게 주고 버렸다.
오른 쪽으로 야롱강을 따라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보이는 강 들판과 왼쪽에서 휙휙 지나가는 회 청색 돌산에는 가까이에서 보면 하늘로 향하는 티베트인들의 치성이 담긴 사다리 그림이 있고 멀리 보면 산과 들판사이에 치장한 솟대, 룽따와 오방색기가 줄줄이 펄럭이는 타르쵸(바람말)는 마치 길가에 여행객을 기다리는 치장한 설산 사자 개를 타고 깃발을 높이 든 수행자들의 행렬같이 보였다. 이러한 전통은 몽고의 한 중심이던 현 시베리아 바이칼 호에서 보았던 바위산과 나무 가지에 펄럭이는 선왕당(仙王堂)과 맥락이 같았고, 이제 4천년이상의 티베트 본교의 전통이 1500년의 불교수행을 통해 융합된 것 같아서 , 남미 칠레나 페루의 어느 전통적인 원주민 기념품가게 앞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리고 이곳의 독특한 천당 가는 사다리는 마치 참전계경에서 보는 “천당은 선행을 계단으로 삼아”오른다는 말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티베트민족은 황궁, 유인, 한인, 한웅을 따라 쳔산, 바이칼, 홍산, 태백산에 당도한 우리조상들의 일부가 동쪽으로 남미에 이르고, 서쪽으로 히말리아 동쪽에서 머물러 살아온 증거가 아닐까? 신시에 솟대를 세우고 신단수주위에는 돌무지를 만들고, 천지인 3태극을 상징하여 빨강, 파랑, 노랑색으로 치장한 선왕당을 그려보면 룽다와 타르쵸의 저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었지 않을까? 신기한 것은 티베트의 사자기를 비롯해서 티베트 불교문화에 태극문양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다음호 비베트 기행 III에 계속)
다음 우리 일행사진 있으시면 넣어주세요
1, 멀리서 펄럭이는 타르죠와 사다리 사진
2, 치장한 사자 개를 타는 우리 일행의사진
3, 3태극 등 태극문양이든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