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2008년 7월3일, 285년 전 아담 스미스가 출생한 스코트랜드에서는 처음으로 세운 동상 제막을 기념하는 학술 토론회가 THE CAVE라는 건물의 당시의 옛 디베이트 홀에서 열렸다. 오늘 아침 우연히 런던에서 같은 기차로 이곳에 온 것도 인연이지만, 많은 아담스미스 후계들을 소개해주고 특별히 좋은 자리에 안자서 듣게 마음 써준 아담스미스연구소 Dr. Pirie소장을 맛나고 전통적인 Debate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진지함과 흥분, 고함과 유머로 가득 찬 한 시간여의 리셉션과 토론을 통하여 새로운 친구도 새기었으나 아담스미스의 열열 한 지지자들이 많다고 그들이 믿는 한국과 일본인을 닮은 필자에 대한 관심은 부담까지 느끼게 헸다. 청중들과 토론자들은 시종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열띠지만 자연스럽고 환호와 야유를 석어가며 “자유”스런 의사를 표시하는 모습은 참 민주주의의 기초를 경험하게 하였다. 전통적인 모습으로 토론을 주재하는 Chair/좌장, 의안을 제안하는 구릅, 그 제안을 반대하는 구릅과 아래층에 양쪽으로 나누어 의자에 갈라서 앉아있는 주요(?)참가자와 아래 위층의 공간을 메운 청중들로 토론장이 구성되고 무대같이 꾸민 연단 상좌에 좌장이 의장 오른쪽에 제안자 3명, 왼편에 반대자 3명이 차례로 자리를 하였다.
BBC Scotland Political Editor(정치부 주간) Brian Taylor씨가 의장이 되어 사회를 보고 제안자(Proposing)측으로는 전 스코트랜드 수상 Drumlean 경(Lord)을 회두으로 하고 아담 스미스연구소 소장 Dr, Madsen Pirie와 전 World Debate Champion인 Andy Hume이 차래대로 앉았다. 그 반대(Opposing)쪽에는 전 Energy 장관이었던 Brian Wilson씨, Alex Neil(현 스카트랜드 의회의원-Scottish National Party) Kenny Fleming(전 Observer Mase Champion)이 각기 노트를 가지고 자리를 잡았다. 한참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가 했더니 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가 있는 포디움으로 걸어 나오자 장내는 숙연할 정도로 조용해지고 전운이 감도는 듯 했다. 의장은 포디엄에 걸어 나와서 청중을 향해 토론과정과 참석자를 소개하고 사회를 시작했는데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가끔 주의를 주는 듯 작은 종소리 같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종소리가 가끔 의장이 아닌 사람(청중)에 의하여 쳐졌는데 그것이 방해나 찬성을 표시하는 보조기구로 사용되는 듯 했다. 제안자 측의 회두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선체로 먼저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얼마나 적절하고 창의적이며 이 시대에도 그것을 적용할 필요성에 대하여 역설 하였다. 가끔 환호와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제안 설명이 끝나자 반박하는 일장연설이 반대 측 회두에 의하여 진지하게 전개되는데 얼마나 보이지 않는 손이 허황한 것인지 논박하는 것이었다. 여섯 토론자가 차래로 반박하고 찬성하는 발언을 하는데 청중은 환호로 찬성을, 야유로 반대를 표시하면서 장래는 정중함과 함께 고성도 오가면서 흥분이 고조되곤 하였다.
연단위에서 모든 발언이 끝나고 난후, 의장이 포디움으로 나와 풀로워에 질문이 있거나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 하면서 간단하게 요점만 주문하였다. 손을 든 청중 중에서 의장이 지적한 사람이 발언을 했는데 토론자들은 그 발언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7명의 발언자가 위층과 아래층에서 골고루 나왔으며 그 내용도 찬반으로 갈리었고 찬반토론에서 보듯 청중들은 함성으로 격려도 하고 야유도 거침없이 하였다. 의장이 청중 발언종결을 선언하고 청중들에게 찬반을 물었는데 제안에 찬성하는 쪽이 더 많은 듯 “예이”소리가 “네이”보다 더 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의장은 자기의 청각에 의존하지 않고 찬성을 거수로 표시해달라고 요청하고 손든 사람 수를 헤아리는 듯, 세기시작 하더니 세기를 중단하고 반대자에게 거수해달라고 요청했다. 분명히 의장은 찬성표가 많다는 것을 함성의 크기로 알고 있었지만 세기 편한 반대자수를 하나하나 세어서 찬성이 절대다수라고 제안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첫 번째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논문이 나온 지 232년이 지난 오늘, 본바닥 에딘버러 “The Cave”토론회에서도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필자도 열열 한 박수와 거수로 확실한 찬성을 보냈다.
아담스미스 동상
기록을 통해 보는 아담 스미스의 일생(1723-1790)은 보통사람의 기준에서 성공한 학자요, 존경과 명성을 한 몸에 지닌 활동적인 생활인으로 죽는 날까지 활발하게 삶을 산 행운의 인생같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그가 생전에 주로 활동하고 봉사한 에딘버러지방에서는 그에게 소홀한 대접을 한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죽는 그날까지 아직 대학에서 경제학이라는 독립과목을 강의하지 않던 그 시절, 많은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청, 토론하며 열심히 경제학의 실용과 사역(使役)의 삶을 살아가며 “보이지 않는 손”을 널리 알리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서거한 후 218년이 지나서야 그의 동상이 세워진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가 말년을 지낸 저택이나 묘소가 너무 초라(?)하게 관리되고 있어 그를 따르는 학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거나, 그의 저작과 업적을 기리는 아무것도 여행자의 눈에는 잘 띠지 않는 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중세 종교중심의 삶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영국 북쪽지방의 에딘버러나 그래스고 지역의 민심이 “신의 손”에 의해 계획되고 실현된다는 그 당시 보편적 사고를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을 내세운 최초의 사회 과학자를 순수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 보다 1세대 전에 과학자 뉴 톤이 나왔지만 그는 대륙에서의 코페르니크스나 가릴레오 같은 풍파는 없었고, 그 후 다윈의 “적자생존”론도 교회의 창조론에 반했지만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과 그 전에 나온 보이지 않는 손의 충격의 중화로 큰 화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담스미스의 사회적 명성과 정치지도자들과의 실용적인 친분관계로 종교적 불이익을 받은 흔적은 없으나 그의 사후 교회 묘소에서 받은 차별은 잘 보이게 나타나 있었고 그것을 웅변하듯 아담 스미스연구소 원로들이 그 묘소의 초라함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담 스미스의 시장주의, 자유경쟁, 작은 정부의 경제이론은 칼 마르크스의 계획경제, 계급독제, 유일체제의 공산주의 이론은 물론, 좌파적 수정자본주의 까지 극복 21세기의 보편적 경제체제로 우둑 서게 되었다. 고향에서 홀대(?)받아온 그를 더 이상 두는 것이 민망했던지 드디어 영국의 아담스미스연구소를 비롯한 미국과 세계의 아담 스미스 신봉자들이 힘을 모아 실물크기의 청동동상을 높은 좌대 위에 그의 친구 흄 경의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에덴버러의 중심인 Royal Mille의 4거리 위에 웅장하게 세웠다. 동상제막식은 동상조각가 Stoddart와 아담스미스연구소 사무총장 Butler씨가 진행했고 약200명의 참석자와 100여명의 여행객 등이 참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에서 온 Smith교수는 제막연설에서 아담 스미스의 위대한 이론이
자연법적 자유가 축소되고 정부의 크기는 증대될 것이다. 정부(권력)가 커지면 커질수록 개인(자유)은 작어지고, 법이 늘어갈 수록 할 수 있는 일은 적어지며, 자연에 반항 할수록 자연의 반격은 커짐으로 노자나 스미스가 다 궁극적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최선의 수단이요 가장 수승한 정책으로 보았다. 공산주의 경제사상의 붕궤로 시장경제에 대한 도전은 살아졌으나 환경논자와 복지위주 정책을 요구하는 좌파내지 Liberal들은 더 거세져 우파 내지 보수주의자들은 더 힘겨운 현장 투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시대이고 간에 비율이 많을 수 박게 없는 사회인들이 현재가 고통스럽다며 변화를 주장하지만 변화는 시도(試圖)일 뿐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불확실한 목표가 없는 변화주장은 더욱 불안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좌파정부탄생에는 “바꿔, 바꿔 모두 바꿔”로 시작하는 변화에 대한 무조건적 열망으로 이루어진 기적이었고, 천하의 여걸 힐러리를 문어트린 것도 오바마의 “변화, 변화”라는 주문의 결과였다. 인간들이 변화를 원하건 안하건 관계없이 세상은 변화하고 바꾸자고 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서서히 변화해 간다. 누가 변화/바꾸자고 말하기 전에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물길을 터놓아도 사람들은 그것이 잘될까 걱정함으로 아담 스미스는 사회인의 속성인 이기심의 작용인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고 안심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 좋은 인간/ 성인집단이 탄생하지 않는 한 우뚝서있는 동상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인위적 변화보다 자연을 더 믿어보라 손짓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