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금
-1- 발동이 걸리지 않는 기본정책 튠업을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2008년 들어 2번째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1970년 말 미국에 유학 온지 꼭 17년 후인 1987년 봄에 조국을 첫 방문 한 후 점차로 회수를 자주하다가 1990년대 조국통일문제에 빠져들면서 1년에 두세 번식 방문이 잦아졌다. 아무리 자주 방한을 한다 해도 비행기에 오르게 되면 조국을 향한 가슴 설렘은 변함이 없다는 것, 이민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심경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조국에 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부모님에 대한 사모의 정이 차 있고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타국 같은 제2조국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의 부족함 때문일 거라는 대강의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러던 필자의 생각이 근자에는 여러 가지 뇌(腦)내 불협화(不協和)의 감상에 졌게 되고 조국이 딴 나라인양 새삼 놀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게 되었다. 필자는 조국에서나 현지에서 비판하는 소리를 자주하지만 그것은 고국과 동포사회의 세계화-선진화를 향한 자랑스러운 발전을 위한 희망의 표현이요 그 성취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노력의 일부이었지 이번 여행에서 본 것 같은 실망스러움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필자는 1주일 되지 않는 시간에 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하나는 4월29일 평화문제연구소가 주관한 “신정부의 대북정책과 발전방안”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5월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강당에서 열린 통일교육협의회 정책개발위원회가 주관한 “통일교육 환경변화 거버넌스 개선방안”이었다. 이들 세미나의 주제에서 보듯 한국의 중요 통일관계 NGO지도자, 학자, 정부 관료가 새 정부의 통일정책과 통일교육전개에 정책자문을 하는 중요한 자리였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심도 깊은 발제와 열띤 토론을 전개한 매우 유익한 자리였다.
실용보수를 내 건 이명박정부의 출범으로 “신사고”와 “정책적 전환”를 추구하는 세미나를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느낀 것은 두 세미나 모두 과거 10년간 남북관계를 주도한 북한의 영향과 좌파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머물러 있어, 새 정부의 변화의 노력이 일선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좌파의 그늘 속에서 자란 억센 풀뿌리는 일선 실무 층의 의식을 변질시키고 학자의 비판의식을 무디게 하여 변하는 현실과 국민적 여망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훈습을 버리지 못하여 학문적 사고와 논리적 판단이 살아지고 오만과 무례한 단견만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첫 번 과제였던 새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한근대화과제에 대한 담론에서는 북한이 최근 침묵을 깨고 “비핵. 개방. 3000”구상에 대한 전면부정과 남북당국자 대화거부, 북한 내 한국정부의 주재공무원의 추방, 그리고 이 대통령을 역도라고 맹비난하는 북한의 포악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새로운 출구를 구상조차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용주의적 남북관계를 주창하였다면 지금쯤 당면하는 사항에 대처하면서 대한민국(보수)을 지키는 남북관계의 활구(活口)가 나왔어야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북한이 기피하는 당국자가 아니라 남북협력공사 같은 공기업을 통한 남북협력기금투자와 북 기업훈련을 담당하는 그런 새로운 협력체제 등 을 준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의 반항에 대응할 묘안이 서있지 않고 보니 아주 피상적이고 북한의 변화만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진취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아 실망만 주고 있었다.
두 번째 과제인 통일교육담론은 대북정책담론과는 달리 순전히 남한의 국내문제로서 지난 10년간 좌파정권 특히 전교조에 의하여 지배되고 왜곡된 남한의 통일교육을 어떻데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시정 새로운 방향이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이명박시대의 열림으로 통일교육이 변화와 전진을 하리라는 기대는 전문가와 일선실무자들이 모인 이번 세미나를 통해, 이런 기대와는 반대로 새로운 마인드가 아니라 옷만 갈아입고 나온 사람들 같이 전혀 변화와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2- 좌파의 조직적 저항
1999년 김대중은 그의 친북이념을 접고 김종필과의 합의를 지키기 위하여 통일교육의 최고법인 “통일교육지원법”을 제정하였었다. 동 법은 그 기본원칙으로 법 제3조 1항에 “자유민주의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방향과 동조 2항에 개인적. 파당적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동법11조에서는 교육자가 자유민주의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통일교육을 실시할 때는 통일부장관이 고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시행지침에서 객관적사실과 정보의 ”전달“,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토의“ ”참여“ ”관찰“을 통한 체험학습을 하도록 교사들에게 학습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김대중정부의 호, 불호와 관계없이 좌우(양김)의 합작이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그것이 헌법에 합치하는 것이라면 김대중과 그를 계승한 노무현정부가 당연히 지키고 실천하였어야 옳았다. 또한 그것은 대한민국헌법의 통일원칙인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적 통일원칙에 따르는 것이어서 헌법규정을 집행하는 하위 법으로서 당연히 따라야지만 좌파정부시절 내내 무시되고 더 나아가 이를 개정되어야 한다는 전교조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으며 교육현장에서는 이를 무시, 사문화시키었다. 심지어 전교조를 따르는 교사는 북한찬양과 연방제지지 같은 대한민국헌법에 위배되고 통일교육기본법규를 무시하면서, 학생들을 빨치산추모제에 데리고 가는 등, 지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파당적 목적으로 오용되고 있으나 이를 감독하는 통일부는 제지 또는 고발은커녕 그들을 비호, 묵인하여왔다.
이런 과거 10년간의 통일교육행태가 보수정권으로 회귀한 이 시점에서도 통일교육정책이 조금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즉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정부기관 강당에서 통일교육협의회 정책개발위원회가 주관하여 정부예산으로 08년5월2일 열린 세미나에서도 좌파정권의 통일교육지침이 “자유민주의 기본질서” 유지라 했다며 안보위주-보수적이라고 공격하는 좌파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안에서 회의장에 사용할 적당한 태극기를 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국민의례를 생략하고 공식회의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위를 무시하고 아직도 북한의 눈치를 살피며 시카고의 한 기념행사장에서 앉아서 만세삼창을 한 것과 같이 북한을 의식하고 대한민국을 폄하하려는 의도적인 진경(珍景)같았다. 이는 지난 10년간 태극기대신에 반도기를 흔들고 인공기는 달아도 태극기는 배제하는 그런 이념적 산물로서 어떤 논리로도 묵과할 수 없는 과오라 하겠다. 이렇게 법과 현실이 괴리되는 교육현장에서의 불상사는 교육지침의 수립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거쳐 법으로 정해진 내용을 일부 일선 교사들이 소속 노동단체의 이념적 투쟁에 동조하면서 학생들의 토론과 판단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의 사상주입교육을 하는데서 오는 것 같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헌법과 법령집행에 보다 철저하고 준법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는 일반국민에 대한 것 같이 준엄한 불이익을 주고 이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질서를 무시하는 개인이나 단체 특히 격렬한 전교조의 위법행위는 그들이 교육자라 하더라고 법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이 현행헌법에 저항하려 한다면 차라리 헌법개정운동을 하도록 경고하여야 할 것이다. 세계화-선진화를 이룩하려면 보편적 세계질서 특히 준법정신이 투철해야 한다는데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법위에 사람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더군다나 민족의 지상과제 중 하나인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에 있어 서랴! 모름지기 교사들은 편협 된 파당적 이념이나 이론의 주입식 교육을 지양(止揚)해야 함은 물론 보편적인 방법으로 “문제의 제기-토론-판단-결론”을 유도하는 교육방식을 택하도록 권장할 일이다. 일반 사회과학의 교육방법이 이럴 진데 통일 교육만 담당교사의 선입견이나 이념적 판단이 어린학생들의 자생적, 자율적 판단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학생 동원, 4.19정신일 수 없다
지난 두 좌파집권기간, 통일-역사교육을 친북한-반 대한민국적인 파당적 이념이나 후진적인 주입식교육을 일삼아 온 전교조 교육방식을 교정 불식하려하면, 선진문화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 과학교육을 지향하려면 바른 정보, 토론을 거친 건전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교육방법을 광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의 이념편향과 사상주입식 교육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는 정부나 정부의 지원을 밭는 통일교육협의회 같은 기관이 지원법이나 교육지침을 강조하고 감독한다 하더라도 1-2년 내에 건전한 민주시민교육은 바랄 수 없을 것이며 그 폐해는 커질 수박에 없게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지금 인터넷 매체와 중, 고등학교 공식-비공식학습과정을 통하여 거침없이 번지고 있는 광우병 미국산소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도 필자가 한국에 있던 5월초부터 본격화 되고 있는데 이것도 소위 교육자의 탈을 쓰고 현장에 나와 있는 좌파신봉자들에 의하여 선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법무, 경찰책임자들과 현장의 교육감들이 피력하였듯이 어린학생들의 우상인 일부 교사의 현장교육과 배후에서 촛불 시위를 선동, 조종하는 개량한복을 입은 전문데모선동자와 이번에 나타났다는 “자전거선발대” 등 좌파의 계획적인 지원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경찰청은 “자전거를 탄 선발대가 미리 나아가서 리드하고 있는데다 곳곳에 나타나 경찰력을 분산시키는 등 우발적이 아니고 치밀한 것 같다”고 하고 쇠고기수입반대시위를 위한 “촛불 문화제”를 주최하고 있는 “국민대책회의”측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때나 반미, 반 보수, 반정부시위는 배후가 있게 마련이다. 한때 신봉하던 이념 시(詩)를 버리고 이제 생명(生命)주의를 한다는 민족시인(?) 김 모 씨는 이번 촛불시위를 4.19와 붉은 악마와 연결하고, 촛불시위의 중심인 국대위 박모 상황실장은 “청화대로 가자!”고 선동한 것은 4.19때 자발적으로 “경무대로 간” 학생들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고 민족사적 명분과 논리가 결여된 잘못된 것임을 자각해야한다.
지난 방한 시(5월2일), 필자는 일군(一群)의 통일전문가, 교육자들의 대화 중에 의식적으로 사실과 다른 조작된 정보를 서로 퍼트리며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이들에게는 항의나 옳은 정보제공도 아무런 효험이 없는데 그것은 그들의 이념 때문인 것 같았다. 북한학과로 유명한 모 대학 이모교수의 말- “오늘 초불 많이 모였다죠? 끝장을 내야 해, 미국에서도 곰탕을 먹지 못하도록 한다더라.” 필자- “무순 말씀인지? 나도 미국에 사는데 그것은 금시초문인데요. 미국 어디서 그런데요?” 이 교수- “미국 중부에 있는 몇 개 주에서 그런답디다. 그리고 시민도 시민 나름 이지요” 필자(약간 격양되어)- “제가 38년 중서부에 살지만 그런 법 있다는 소리 못 들었고 한국에서는 -검은머리 외국인이라 자기 동포 폄하하지만 미국 법은 한국계 미국인이나 영국 계 미국인이 달리 취급 받는 일 없으니 그런 잘못된 정보로 학생 가르치지 마시요.” 이 교수-(묵묵부답) 필자- “쇠고기수입제한이 우리 축산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야지 광우병에 걸릴지 몰라 라면, 마치 미국정부가 한국 검사관이 뇌물을 먹고 불량한차를 합격시킬지도 몰라 수입이 곤란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떳떳하고, 논리적이며, 공평한 주장을 해야지, 판단능력이 부족하고 주입식교육으로 따라가기에 습관이 된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어서야.” 교수나 필자나 얼굴만 붉히며 자리를 갈라섰다. 원래는 아래층에 마련된 만찬장에 함께 참석했어야 하였으나 씁쓸한 기분으로 그들과 합석할 마음이 살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선생들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촛불에서 이성적 민주주의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새 정부의 시책에 대항하는 좌파들의 반격이 힘겨울지 몰라도 정부는 선진화를 선도하는 우파 정치-경제-문화논리로 재무장, 좌파의 실패를 공격하고 국민이 이해하고 안심하여 따라 올 수 있도록 홍보와 소통노력을 배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