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과 침묵
정치의 시작은 웅변(雄辯)이고 그것은 원래 “사내다운 말”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말 하는 사람이 누구이건 상대방(청중)을 “분명한 논리로 유창하고 감동적으로 설파하는 말솜씨”로 정치가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무기 중에 하나이다. 갑자기 웅변을 주제로 삼은 것은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맥 케인과 민주당의 예비후보군인 오바마와 클린턴, 모두가 대단한 웅변가로 보이고 특히 오바마는 청중을 들뜨게 하는 웅변술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침묵은 다이야 몬드요 말은 금”이라고 믿어왔지만 요즈음은 말은 금석맹약(金石盟約)이라도 말하는 사람이 검증되지 아니하면 이를 100%믿지 못하게 된 세상이 되었다. 정치가 특히 민중의 투표를 의식한 후보들의 말은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미사여구(美辭麗句)와 정연한 논리를 사용했다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믿거나 그것이 확실히 실천되리라는 보장은 전적으로 그 웅변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럼으로 우리는 말하는 사람의 과거와 그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검증하며 그의 능력과 그의 소속된 구릅을 보고 실천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선거전에서 주자들의 웅변과 침묵의 가치를 따져보는 것도 우리의 정치적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먼저 민주당후보 경선과정에서 오바마와 클린턴이 벌리고 있는 웅변을 심층 분석할 필요가 있고, 웅변은 하는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가도 중요하고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고 이해하는 가가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민주당은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자유로운 변화”를 추구함으로 “진보(progress)주의”정당이라는 우리 표현이 적절하며 이 때 한국에서 쓰는 좌파(공산 또는 사회주의 노선)라는 말과는 구분하여 써야 옳다고 본다. 민주당은 시장경제, 작은 정부(개인의 자유), 감세, 강한 미국정책으로 대변되는 공화당의 보수노선과는 달리 복지중시, 사회변화에 따른 소수의 자유보장, 큰 정부(증세) 등 변화를 적극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 변화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잘못된 변화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도 정치가의 최소한의 역할이다. 이는 선별적 변화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보수는 수구(守舊)와 구분되고 책임 있는 자유만을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분방한자유주의자와 진보가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소수자인 동성애자보호가 필요하이지만 개인자유보호차원을 넘어, 보편적사회제도 개혁을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꾸는 일은 안 된다는 것이 보수-공화당의 주장이다. 복지-증세와 자유-감세, 큰 정부와 작은 정부, 검증된 제도에 대한 변화저항과 확실치 않은 변화추구 등 서로 반대되는 정책에 대하여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데 여기에 골수 정당파와 유동적 그리고 무당파자간의 상호관계를 거치는 동안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것이 미국이라고 생각된다.
오는 대통령선거에서도 변화가 없을 골수파에 이탈(離脫)파와 무당파자가 이합, 새 대통령이 선출될 것인데 그 결과와 각자에게 미칠 영향을 가늠하는 것은 대단한 스릴이다. 특히 세금, 보험에 변화냐 소강상태로 남느냐 하는 문제와 미국의 지구촌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냐 증대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이번 선거에 변화의 분수령으로 남을 것 같다. 지금 알 수 없는 오바마의 “변화”에 열광을 보내는 다수와 이락전쟁종결과 전통적민주당 정책을 약속하는 클린턴을 지지하는 소수 간에 역사상 유래 없는 장기-씨소계임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승리하더라도 맥케인 쪽에서 보면 둘 다 “리버럴”로 볼 것은 당연하다. 인종, 후보 나이, 보수 진보에 대하여 아직 침묵하고 있지만 11월에는 흑-백, 보수-진보, 노-소가 다이야 몬드처럼 날카롭게 이슈로 대립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14-15일 “공화당전국위원회 08. Spring National Meeting”에 참석한 필자가 만난 맥케인후보의 96세 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은 적어도 노-소 논쟁만은 웅변보다 확실하게 닫아버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