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북한 병사의 귀순(2012.10.9. 림관헌)
지난주(2012.10.6.)북한 하급병사 한명이 경의선(개성공단과 통하는 길) 공동관리 구역 북한 측 초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상관인 소대장과 분대장을 사살하고 500m 남방에 있는 한국군 초소로 질주, 무사히 귀순하여 한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꿈직하고 위험한 방법을 택했지만 휴전 후 반세기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는 군사분계선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병사들에게는 이런 사건은 하나의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또 하나의 급박하고 긴장한 상황일지 모른다.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한지 일천하지만 그동안 형인 김정남 제거 음모론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 불안정과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파탄이 지속되고, 그의 강경한 탄압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지만 그 내막을 알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자유세계에서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북한에서는 예사롭게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굶 주림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북-중 국경을 넘고, 삼엄한 휴전선을 넘어오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베를린 장벽을 넘다 죽어간 동독인들보다 덜하다하겠는가? 통계에 의하면 1989년 11월 베르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동서 베르린 분계선을 넘다 사살되고 죽은 사람은 통계에 따라 좀 다르지만 대략 1,055명에서 1500명 선으로 보고 있는데 한국전쟁 휴전이후 철조망으로 차단된 휴전선을 넘다 죽거나 살아 넘어, 귀순한 사람의 수는 그 통계를 본 일이 없지만 그 수가 백 여 명을 넘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베르린 장벽은 그래도 살아 넘어갈 확률이 있지만 휴전선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만연하여 있기 때문이다.
10월 6일 12시 6분, 대낮에 상관을 둘씩이나 쏘아죽이고 초소를 탈출하여 달려오는 북한병사나 그런 상황에서 이 북한병사의 귀순을 받아들인 남한 경비병의 상황처리가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 사람들은 그 위험한 휴전선을 넘지 않더라도 작심만하면 북한을 빠져나갈 수 있는 북-중 국경이 넓적하게 열려있고, 제3국을 통해 남한에 들어 온 탈북자가 몇 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니 독일보다야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독일은 우리보다 열악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역학관계나 동독의 대(對) 서독정보기관인 STASI(Ministrium fur Staatssicherheit)의 위협적이고 집요한 서독붕괴책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독의 기회가 찾아왔다. 벌써 20년 전, 동독은 스스로 그 체제를 포기하고 좋은 평화적 조건으로 서독과 흥정하며 흡수통일을 허용하였다. 필자는 지난9월 26일 열린 평화문제연구소와 하인스자이엘재단이 공동주최한 한독워크숍에서 통독과정에 동독과 서독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쟁에서 패자와 승자가 나온 것이 아니라 동구전체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던 동독 스스로가 서독의 자유와 시장체제를 받아들이기로 하는, 참으로 갑자기 찾아 온 기회를 잘 수용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독은 동방정책 이후, 동독에 많은 마르크를 지불하였지만 그것은 김대중이나 노무현 대통령같이 그냥 퍼다 준 것이 아니라 도로사용료라던가 기타 대가성 지출을 점차 늘려감으로서 동독이 서독에 재정적 의존을 기대하게끔 점차적인 정책을 썼다는데 큰 감명을 받았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특히 놀란 것은 동독이 간첩과 자생적 협조를 통해서 서독에 협력 망을 늘리고 학생들을 포섭해서 장차 서독의 정부부처나 사회에 진출한 후, 동독의 정보기관을 위해 활동하도록 그 세를 확장하는 과정과 수법이 어쩌면 남한의 실정과 이렇게도 같을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협적이고 완강하던 동독은 스스로 문어졌고 크게 위협 받던 서독은 무혈 흡수통일을 이루었다. 북한은 핵무기로 남한을 위협하고, 남한 내에는 정계를 비롯 수많은 종북세력과 친북세력이 노골적으로 위협하여, 남한의 경제적 성공까지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최근 수 개월간 북한의 일선 병사 셋과 민간인 한사람이 그 삼엄한 경계선을 넘어왔다. 북한 동포들이 남한의 자유경제체제를 이제는 신뢰하게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동독 같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는 북한을 기대해도 될 것일까? 대낮에 남가일몽(南柯一夢), 평화 통일의 꿈을 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