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창가 1>림관헌 코너(2010.11.5.)
<진실(眞實). 곡해(曲解). 왜곡(歪曲)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늘 보는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해석하는 눈을 살펴보면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진실한 상태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오해하는 곡해상태, 그리고 사실을 억지로 구부려 해석하는 왜곡의 상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항상 진실한 상태를 원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부지불식간에 곡해를 하거나 어떤 의도에서 일부러 왜곡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무실역행하는 것은 선(善)이고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곡해는 비(非)선이요 왜곡은 불(不)선이어서 둘 다 악(惡)이다. “선(善)을 받들어 행하고 악(惡)을 짓지 말라 한 것은 성인들이 가르치는 잘사는 길이요”, “거짓을 행하지 않는 것은 천당에 이르는 지름길”이며,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사물을 살펴서 진실을 알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착한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모든 성현이나 스승이 진실하게 살아야한다고 가르치지만 어리석은 우리들은 모르게, 또는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를 바주 본다. 그리고 그 결과로 세상에 피해를 줄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크나큰 부담과 괴로움을 안기는 경우가 많다. 후회하고, 참회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만 한번 얼룩진 악행은 지워지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이 기억하기 때문에 그것을 갚아가기란 너무 오랜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사람이 진실하게 산다는 것도 어렵지만 세상일을 왜곡하거나 곡해하여 삐다닥, 구부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하루에 세 번 되돌아보고 반성했으며 공자님 같은 성인도 60이 되어서야 겨우 하시는 일이 모두 법도에 알맞게 되었다 하시고, 순임금은 내가 하고자하는 바가 없어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의 일상이 되어 저서야, 구어 낸 질그릇까지도 모두 올바르게 되었고, 하나하나 하는 일이 다 명명하여 도에 알맞고 덕이 되어 천하를 이롭게 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