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의 마지막 말 오! 와우(잡스 #1) (2011.12.17. 림관헌 이)

지난 2011.10. 5일 56세의 아까운 나이로 이생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간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는 살아서도 유명하였지만 죽어서도 그 생애의 명성과 업적이 더욱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의 생애는 “APPLE”을 창사한 1976년 이전인 무명의 시절과 덩치가 큰 컴퓨터를 개인용 컴퓨터로 축약(縮約)개발하여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쉬지 않고 발전시킨 IT시대의 거대한 창작자로 살아 간 시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의 성씨인 잡스와 그의 친-여동생인 “모나 심슨”의 이름을 보면서 짐작하게 되는 바와 같이 그는 신의 계획에 따른 축복 받는 결혼의 산물이 아니라 인과응보라는 원인과 결과라는 필연과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미국을 풍미한 히피문화의 산물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1955.2.24. 그가 태어난 샌프란시스코는 1966년경 부터 본격적으로 히피가 왕성하여 1970년대를 풍미한 히피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미 그 당시 극도로 기피의 대상이었던 기성 세대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딸이 아랍계 이민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던 어머니 조앤 심슨의 부모들에게 피해를 입은 그의 친부모들도 아마 히피족의 초기 기수였을 것 같다.
미국의 히피들은 베트남 전쟁, 케네디와 맬컴 엑스, 마틴 루터 킹의 암살 등으로 통념과 기성문화에 분노와 절망을 느낀 청년들이 2차 세계대전 승리 후 1950년대에 완성된 미국의 대중사회와 소비자본주의에 대하여 반항을 한 산물이었다. 이들은 평화(반전)를 사랑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쳤으며, 도덕보다는 자연스러운 질서, 이성보다는 자유로운 감성을 중시하고, 현실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반문화 운동이었으며 1966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긴 머리로 맨발이나 샌들을 신고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마리화나, LSD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면서 동양적인 것, 특히 선불교적인 정신과 변형된 기독교의 명상, 크리스나교, 원주민 인디안 신앙, 향략주의 등, 새로운 뉴 라이프에 매료되기도 했던 운동이다. 이런 히피의 선구자였을 위스콘신 대학 대학원 동거 커플인 미국 여인 조앤 캐럴 시블(심슨)과 시리아 출신 무슬림 유학생인 존 잔달리 사이에서 태어난 잡스는 통념에 사로잡혀 딸의 결혼을 반대한 외조부의 희생이라는 인연으로 태생적으로 히피에 접근하게 된 것인지 모른다. 결국 생부모는 서로 헤어지게 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태어난 지 1주일 후에 그의 어머니에 의해 산타클라라(CA)에 사는 폴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으며 그는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언론인 출신이며 잡스의 제안으로 그의 전기를 쓴 아이작슨은 현재 애스팬 연구소장이며 아인슈타인, 키신저의 전기를 쓴 유명한 전기 작가이기도한데 그는 잡스와 27년간 아는 사이이고 그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와 50번을 인터뷰하고 100명이 넘는 주변 인물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그는 잡스를 평하여 “반 문화적 인간이었다. 그는 히피이기도 했으며 1960년대 말의 반체제, 히피운동과 실리콘 벨리의 공학기술운동을 하나로 합치려 했고 그것이 애풀 정신의 essence(精髓)라고 하였다”. 최근 아이작슨의 잡스에 대한 평판 중 필자를 오싹하도록 감동하게 하는 기사 중에는 “스티브 잡스를 분발시킨 가장 중요한 동기는 인생이 짧다는 사실이었으며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오 와우'(Oh Wow)라고 세 번 외쳤다고 하는 대목이다.” 아이작슨은 “그 의미는 누구도 추정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가 인도를 여행한 후 맨발로 돌아와 일본인 선승이 가르치는 참선을 수행하였으며 일생을 맹렬하게 참구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아는 불교인들은 그가 인생을 스윗지를 키고 끄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내세(來世)가 눈앞에서 클릭하며 바뀌어 펼쳐지는 것을 보고 찬탄하여 나온 소리가 아니었을까?
아이작슨이 잡스가 종종 ‘삶을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하였으며 그는 죽기 전에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하고 그가 “창조적인 인간이었으며 그의 창조성은 ”다르게 생각을 하는 능력,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고자하는 열망”에서 오는 것이고 이것은 위대한 제품을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하겠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많은 과학자들의 통념을 뛰어넘어 “다른 것”을 추구한 선각자로서 그가 “윤회를 믿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그 무엇이 있다고 믿었다”고 말한 그의 말대로 죽음(적멸)에 임해 그것을 확인하여 나온 환호성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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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Rim - 림 관헌, 한미 시민 연합 초대회장 역임, 공화당 The President Task Force 멤버, 시카고 전중 앙일보 객원 논설 위원 시카고 한국일보 칼럼리스트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수령 16기 대한만국평화통일자문위원회운영위원(본부) 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동양철학) 대한민국 평화통일 자문위원 역임, 시카고 상록회 이사장 역임, 시카고 불타사 지도법사, 미 중서부 한미 장학회 회장 역임, 미 중서부 전통 예술인 협회 이사, 상임고문, 성균관 대학교 유학 및 동양철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