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제연구소의 해외활동을 돌아보며(2013.10.24. 평화문제연구소 해외담당부이사장)
평화문제연구소는 국제적으로 소련이 국제공산화정책을 포기하기 시작하고 국내에서는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합)의 주체세력과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충돌이 곳곳에서 보이던 변혁의 중간 시점에서 순수 민간 통일정책연구기관으로 1983년에 탄생하였다. 당시만 해도 남북통일은 무력과 이념투쟁 등 폭력적인 흡수통일만을 상상하던 때이고 7.4공동성명(1972) 그것은 정부 간의 선언적 의미 이상의 것도 아니었으며, 광주항쟁의 폭력사태의 기억이 생생하던 1983년 봄, 평화통일을 연구하는 평화문제연구소가 출범한 것이 생소하기만 하던 때이다. 당시 언론과 출판이 위축되었던 시기에 신영석동지가 정부가 아닌 민간주도의 “통일한국”이라는 월간지발간과 연구, 건의활동을 목표로 남북평화통일의 최초의 기수인 평화문제연구소를 개소한 것은 선견지명이며 인생을 건 큰 모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외국에 살면서 모국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사치에 가까운 이 운동에 참여하는 기쁨은 신 동지가 죽마고우가 아니더라도 너무 벅찬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남북의 동포와 함께 다른 하나의 날개가 되어야할 해외동포의 통일운동의 주체가 될 연구소에 참여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으며 정부관계자나 국내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세계사적 측면의 남북통일문제를 공부하게 되었다.
평화문제연구소는 통일한국뿐 아니라 계간연구지, 단행본, 북한향토백화사전 등 주옥같은 평화통일연구의 역사와 고전을 출판하여 좌와 우를 아우르고 국내와 국제사회를 어우름은 물론, 국내, 국제 학술회의와 각종 시의에 맞는 세미나를 개최하여 평화통일 저변을 확산하며 남북정부에 그 진수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1989년부터 독일의 한스 자이엘재단과 협력하여 같은 분단의 경험과 통일의 길을 함께 연구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일을 비롯해서, 1990년 중국연변대학과 연계한 한중학술회의, 1993년부터 해마다 재미동포초청세미나와 LA, New York, Chicago를 찾아오는 평화통일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동포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큰 동력이 되어왔다. 필자의 기억에 지금도 생생한 1993년 LA에서 열린 최초의 친북학자 단체가 토론자로 참여한 세미나에서 지금도 종북학자의 원로라는 양 모교수와 그 추종자들, 그리고 재향군인회 김 모 예비역장교와 그 회원들 간의 고함과 일촉즉발의 난투극 직전에 이른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이런 평화문제연구소의 노력들은 60년간 변하지 않는 종북이념을 미국 땅에 옮기어 번져가는 현실과 북 핵 위협에 무감각한 미국시민 된 동포와 아직도 멸공통일 옛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는 옛 이민자들을 새로운 평화통일역량으로 순화시키는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개소30주년을 맞는 평화문제연구소가 초지일관하며 남북통일의 큰 대들보로 그 역할을 다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