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내의 권력투쟁에 대하여
필자가 노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대하여 비판을 하게 된 첫 동기가 그의 어록 특히 정치는 조삼모사요 권력투쟁이라고 주장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칼럼을 통해 몇 번 지적했지만 적어도 공명정대한 정치를 앞세워야 할 대통령이 자기가 이끌어 가는 한국정치를 권력투쟁이나 조삼모사 하는 천한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을 보고 울분하였기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이 씨가 되었는지 여당인 “열린 당”의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로부터 코드 인사, 측근 중용의 병폐에 대한 공격을 받고는 “이 상황은 권력투쟁”이라고 원색적인 공격을 했다. 노 대통령은 최측근이며 평생 동지인 김병준과 문제인 중용에 반발하는 당 지도부를 향해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진 마지막 카드로, 이것을 흔들고 무력화시키면 안 된다”고 하고 “나보고 나가라 하지만 나는 절대로 탈당할 수 없다. 나갈 사람들은 자기들이 나가면 된다.”고 하여 전에 몇 번 회자하던 탈당 문제까지 없었던 것으로 끊어 말했단다(06년 8월4일 한겨레). 뿐만 아니라 그는 “계급장 떼고 해보자”던 김 당의장을 염두에 둔 듯 “대통령한번하려고 그렇게 대통령을 때려서 잘된 사람 하나도 못 보았다”고 악담 같기도 하고 협박 같기도 한 불만을 터트렸다. 참으로 꾸밈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어린아이 같은 직설적이고 인간적인 노여움의 분출이라 하겠다.
평당원이라 해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출당사유가 될 해당행위가 없는 한 나가라 마라라 하는 것은 당의장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없는 월권행위 일진대, 다른 당직자나 당원이랴. 그럼으로 노대통령이 나보고 나가라하는 사람들은 너희들이 당을 떠나라고 가장 노무현다운 맞받기를 해댄 것은 참으로 리얼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말이다. 조삼모사나 권력투쟁은 공명정대한 정치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음모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정치를 이런 비열한 음모일 수밖에 없다고 표현했을 때, 한 나라의 통수권자의 입을 통해 나와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요즈음 음모론이 자주 대두되는 것은 정치의 공명성, 공정성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 하기 때문이다. 수재와중의 골프에 나라가 들끓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장본인 들이 “음모론”을 들고 나온 정치 환경도 크게 염려된다. 여기에 “정치는 권력투쟁”이라고 스스로 정의한바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나 인사를 잘못하고 있다는 우군(友軍)의 비판을 “이 상황은 권력투쟁”이라고 규정한 것을 들을 때 자업자득이 아니냐고 되묻게 된다. 칼 막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처음으로 소련에서 정착하여 70여 년간 진행되고 한때 세계 절반인구를 현혹시키거나 굴복시킨바 있지만 이제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수 없는 제도로 증명이 되었다. 초기 스탈린의 독재가 확립되기 전 공산소련의 주도권 다툼에서 몇 번 이용된 권력투쟁과 말기공산정부들의 붕괴과정에서 다시 한 번 권력투쟁양상을 보이기는 했지만 공산주의 전성기에는 권력투쟁보다는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만이 있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가 명시하듯 “민주공화국”임으로 국민의 정치적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을 속이거나 무시하면서 음모를 꾸미고 권력투쟁을 한다면 공산주의와 공산당 꿈을 버리지 못한 짓거리다. 이제 정권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이나 당권탈취를 위한 투쟁은 국민의 심판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치(旗幟)가 꽂혀있는 한 불가(不可)함을 알아야 한다. 노대통령은 권력심장부에서 일고 있는 불협화음을 “권력투쟁”상황으로 보고 노(怒)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불협화음 속에 실려 있는 주권자-국민의 조용한 분노(忿怒)에 답하겠다고 결심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말했듯, 1년 반은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대한민국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안녕을 지켜야할 대통령의 다하지 못한 책무도 더 무겁게 알고 과거의 오류를 참회하는 업적을 쌓아야 할 시기다. 이제라도 심기일전, 북한과 일부 남한에 사는 “공산주의의 꿈-주체사상의 허상”에 끌려 헤매는 자들을 선도, 자유민주주의나라로 평화통일의 길로 가도록 살(殺)신(身)성(成)의(義)의 계기(契機)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