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토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왔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조국의 많은 동포들이 이민자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늘 섭섭하여 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길 기대해 왔습니다. 물론 동포들이 주위의 이민자들을 보면서 병역을 피하기 위하여 라거나, 저만 잘 살려고 떠낫다거나, 법을 어기고 달아난 사람들이라거나 하면서 나라나 민족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이라 평할 때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민자 중에도 그런 박쥐같은 사람이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나쁜 사람은 국내에도 수없이 많고 착한 동포 중에도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민자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때는 조국이 잘살게 되었다하여 미국이나 다른 외국에 살다 조국을 방문하는 동포들을 보고 그들을 X포라 비하하면서 업신여기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IMF사태로 조국이 어렵게 되었을 때 많은 해외동포들이 예금을 꺼내 주재국에 있는 고국 계 은행에 넣고 시카고거주 세탁인 들은 조국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며 고국을 단체방문하며 연례총회를 한국에 가서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조국의 동포들이 비하하는 업종에 종사한다며 무시당했던 일을 뒤로하고 이렇게 순수한 조국애를 따뜻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이민자들이 누구인가를 뒤 돌아보면서 극히 소수에 불과한 혐오스런 이민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국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임을 알아주어야 옳다고 생각해봅니다.
일제강점기의 이민자들은 누구입니까? 살기위해서 고향을 등 젓건, 조국광복을 위해서 망명하였건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국내에서 보다도 더 큰 희생과 더 큰 공을 들였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들의 후손들도 해외동포가 되었습니다. 나라가 가난할 때 독일의 탄광과 병원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근대화의 밑천을 송금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 유학생으로 또는 이민자로 도미하여 학문과 기술을 배워 조국에 돌아가려던 애국청년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묶이어 이민자가 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 비좁은 조국에서 새로운 기회와 새 터전을 찾아 나선 동포들, 한국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나온 사람과 그들의 자손,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입양아들, 이런 동포들이 이민자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내 동포들이 혐오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자랑할 한국의 크나큰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국을 떠나서 낫 설고 외롭게 외국에서 손님같이 살면서도 조국을 그리워하며 그 땅에 자리 잡고 집도사고 땅도 작만하면서 낫선 이웃들과 멸시도 받고 경쟁도 하면서 고국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들 이민자를 생각하여 봅니다. 세월이 흘러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어 이웃과 경계를 이루고 대등하게 살게 되면 그 때서야 우리도 이 땅의 주인이 된듯하고 편안한 내 땅이 우리의 영토가 아니겠는가하는 자위를 하게 됩니다. 물론 영토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한나라의 관할권 내지 주권이 미치는 땅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을 조국이라 생각하며 한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내 땅으로 영유, 관리하고 사는 우리이민자 소유의 이 땅과 그것에 붙어있는 이 집은 우리나라의 영토라 한다 해서 잘못 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 양주도 집은 가능한 좋은 것으로 작만하고 한국 사람들이 편하게 한국적으로 꾸미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장구한 우리민족사의 흔적을 이곳에 재현하여 우리고국의 자랑거리를 연출해 보려고 애써왔습니다. 어느 곳에 가던 토 배기들은 텃세를 하기마련이고 이주자를 깔보기 마련인데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기란 쉽지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장 떳떳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자랑꺼리를 찾아 그것을 은연중 저들과 대등하다거나 우수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구한 민족역사일 수도 있고 문화적 유산일수도 있으며 현재의 우수한 생활양식과 국가경쟁력 등 저들을 능가하는 것 모두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와서 거처한 곳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이사한 곳이 시카고 한인학생관을 비롯해서 다섯 군데나 되어, 별로 정을 붙이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되면서 레이크카운티에 정착하게 되는데 전번 집에서 24년, 지금 사는 집에서도 14년째 살고 있습니다. 먼저 살던 집은 건물에 비해 뜰이 넓었는데 그 곳에서는 앞마당 한쪽을 한반도 모양으로 꾸미고 큰 바위로 백두와 제주를 만들었으며 석축을 쌓아 성벽모양을 만들고 소나무, 향나무와 보루수나무며 작약을 심어 한껏 한국을 뻔 내었습니다. 그것은 이웃에 보이려는 것 보다 우리 내면에 흐르는 우리의 정서를 되새기며 조국을 향한 향수를 달래보려는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그 집은 약 2천5백 평 대지를 이렇게 조국을 그리며 가꾸고 실내도 절간 대중 방 같이 꾸미었는데 미국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고상한 정신문화로 인식되고 있는 참선수행의 장소로도 제공하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히피들이 좋아했던 일본식 참선인 “ZEN”은 딱딱하고 교조적인 것이었지만 한국스님들이 전파하기 시작한 “참선”은 자유분방한 참구법이라 서구인들이 접근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각기 전통이 다른 남방계, 티베트계, 일본계, 중국계 등 미국의 남녀 참선수행자들이 한국스님을 모시고 용맹정진 하는 도량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모양새부터 한국영토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은 만2천 평정도의 조그마한 연못을 삥 둘러쌓고 있는 여섯채 집들의 이웃이 모여 사는 곳인데 우리가 쓰는 땅은 5천 평 정도로 반은 버려진 야생상태이고 그 나머지만 좌청룡 우백호를 흉내 내어 뜰을 가꾸고 낮은 둔덕과 작은 모래 구덩이를 골프장을 본떠 알맞게 배치해서 한국의 소나무동산 같이 꾸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밖에서 언뜻 들여다보면 한국에만 있을 법한 명당자리임이 분명하고 더 자세히 관찰하면 정말 고국의 한 영토자락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큰 돌들을 듬성듬성 배치한 “소나무 울”사이의 파킹 장에 들어서, 작은 경사를 따라 연못 쪽으로 내려가면 뜰 끝자락을 조금 높여 만든 화단에 천부인 3재와 고인돌을 닮게 장독대를 만들고 크고 작은 서너 개의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은 까만 독들이 옹기종기 키를 재고 앉아있고 그 주위엔 수국이며 국화-작약 등이 한국 시골의 장광과 단을 연상하게 꾸몄습니다. 그 단의 좌우에는 한국의 산과 들에서 보는 쑥, 도라지, 더덕, 미나리, 우엉, 양귀비, 참나물, 호박구덩이, 머루 넝쿨, 엄나무, 호두나무 등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큰 호두나무와 두 치가 넘을 머루 넝쿨은 아마 수십 년을 묵었을 것이고 우리가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 때 적당한 것들은 그대로 보존해 둔 것들입니다. 이곳에 이사 온 것이 1995년이니까 이때는 시카고의 한국불교사원도 커져서 신도 집을 비워줄 필요가 없게 되었음으로 고국의 친지, 학계관계 인사나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동포들을 대접하는 장소로 이용합니다. 장광의 질그릇이 8천년 넘게 전해오는 우리민족고유의 흑도(黑陶)문화를 상징했듯, 집안 서재를 비롯한 많은 공간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고대사나 고대문물에 관련되는 문건 등을 준비하여 손님, 특히 주류사회 손님에게 자랑하는 일을 즐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국땅에서도 오래 살다보면 우리 것에 대한 자랑거리가 많아지고 집안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 우리의 깨끗하고 좋은 습관을 이웃 백인들도 스스로 좋아서 따라하도록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이제는 미국 인디언이 되어버린 옛날 태양을 따라 동쪽으로-동쪽으로 온 우리 족속의 일부가 연해주의 동북내해를 지나 아류샨 열도를 건너가며 우리고유의 난방양식인 온돌의 흔적을 미국령에 남긴 것을 자랑하면서 LG화학의 PVC파이프로 난방 한 아래층 온돌방을 보여주는 것은 간접적으로 민족문화를 자랑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원주민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 우리가 이들과 더불어 해야 할 일들도 있고 그렇게 함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 우리도 이 땅의 주인이요 생판 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의 역사가 시작하는 최근의 빙하기가 끝나는 1만년 이전인 3만 년 전부터 몇 차래 이동 물결을 타고 미 대륙으로 이주한 현생인류의 역사가 계속되었으며 3, 4천 년 전 그러니까 단군조선 시대에도 우리 동포가 온돌문화 등을 가지고 미국 땅으로 이주했다는 증거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원주민들의 가락이나 춤의 기본이 우리 것과 비슷한 것은 그들의 축제에 가서 우리는 그대로 그들과 한패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에서는 구정 대보름에 미 원주민(인디언)들과 함께 윷 노리를 여러 번 하여 왔고 나도 마야의 유적관광을 가 그곳에서 금방 맛난 원주민청년들과 공기놀이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이민자들인 미 주류시민들이 자기들만이 주인행세를 하다가도 우리이민의 타당성을 슬그머니 인정할 수박에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더 이상 손님으로 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남의 영토를 침범해 산다는 생각, 또는 자기들이 일군 땅에 불청객이 와서 산다는 불평 같은 것은 이제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오는 우리 동포들도 우리 이민자의 역내에 들어오는 즉시 한국영토에 들어 왔다는 편안한 생각으로 우리를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이동하며 사는 새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땅에 이민 또는 이주해 사는 것은 자연법칙에 맞는 것이요 하늘이 준 권리로 유엔헌장이 뜻하는 거주이전의 자유권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면 우리문화와 우리식 실물자산을 이 땅에 심어놓고 우리의 후세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물려주며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문화의 충돌이 아니라 상호이해와 이전으로서 우리의 영토는 확장돼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남이가”하는 사투리로 더욱 친근감을 나타내는 영남 말에는 친근감과 함께 배타의식도 숨어있어 그것은 버려 저야 할 일이지만 나라밖 이민자들과 고국의 동포사이에서는 더욱 많이 써야 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는 정서적-문화적인 영토의식 뿐 아니라, 실물-경제적영토의식도 충분이 고려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고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필자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는 이 미국이민이 개인적으로도 잘한 일인 것 같고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조국의 문화적, 실물적영토를 연장,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어서 대단히 바람직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정들면 고향이라 했지요. 주눅이 들어 살던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한국의 영토를 연장하여 조그마한 아름다운 우리영토를 꾸미고 우리 것을 가꾸며 산다는 것이 마치 어린 시절 “땅 뺏기 노리”를 할 때 상대방 땅에 섬을 만들어 놓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놀던 생각이 납니다. 이 드넓은 땅에서 우리 후세들이 이웃과 어께를 나란히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조국에 대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보전하곤 영토를 보탰으니 내가 잘 했다는 자랑까지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