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한국일보 50년을 돌아보니(2020.6.25. 림관헌 이아침에)
시카고한국일보는 시카고한인의 이민사를 가장 잘 간직해오고 있어서 지난 50년간의 우리들 모습을 드려다 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있다. 며칠 전, 6.17.자 시카고 한국일보 창간(1971년 6월 9일) 49년 기념특집호를 집어 들고, <다시 불끈 힘을 내, 마침내 함께 오른다.>는 표제와 함께 축하광고와 메시지로 전통적인 함께 접기 식 천연색 신문지가 화사하게 펼쳐져 필자자신도 미국이주 50년이 찰라(刹那/순간)에 반짝하며 그 짧지 않은 긴 세월이 휙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시카고에 한국인의 족적을 남긴 기록은 1893년 콜럼버스 미 대륙발견4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박람회인
필자가 조국근대화물결에 실려 감사업무전산화 정부사업효율화 훈련을 목적으로 2년간 미국유학의 행운을 얻어 NIU에 왔다가 감사원장교체와 제2대 이모원장의 해외파견 감사관의 소환에 불복하여 면직(의원면직)됨으로서 무원고립, 시카고에서 생존투쟁에 든 지 몇 달이 안 되어 개인적으로 암담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가 71년 6월 9일이었다니, 16절지의 한글타자로 찍고, 이를 등사한 신문을 얻어들은 필자는 몇 번을 뜯어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한국의 신문은 지금 미주판과는 달리 오늘의 조선일보같이 대문짝만 한데, 16절지에 등사된 시카고한국일보는 학생 때, 명동에 있는 미국대사관인지 문화원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때맞추어 가면 얻어 볼 수 있던
놀라서 한글판(공병우타자기) 타운뉴스를 읽는 기쁨은 대단한 것이었다. 생존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던, 내 생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탄생한 시카고한국일보는 한국신문과 타운뉴스를 미국에서 발행한 첫 사례여서 그 역사적의미가 대단하였으나 정기구독도 못하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새 진로에 접어들 때, 시카고불교사찰의 효시인 불타사 첫 창립소식을 담아 용케도 제집에 배달되어 두 번째로 깜짝 놀라 지인들과 소통도하고 구독자도 되었다. 그 후 승산선사 등 한국고승들의 법회소식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행사에 대한 소식이 이 신문을 통하여 알려지고 지금까지 시카고 불교사가 한국일보지면에 보존되어 있으니 불교발전에도 크게 공헌을 하였으며 이러한 일은 한인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도 같이 일어낳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위대한 재미언론의 역사는 김용화창업자와 함께 언론을 언론을 사랑했던 고 이윤모, 임송백 선생, 아름다운 필력과 춘추필법의 조광동선생, 그리고 한국일보를 떠나 신문사를 옮겨가다 지금은 이념적 방랑자가 된 육길원주필도 포함한 현 김인규사장이하 한국일보창업정신을 지켜 감투(敢鬪)하는 관계자들에게 큰 영광이 있길 기원하며, 소리 없는 독자들 앞에 필자도 고함치며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광장, 시카고한국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