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선하게 산다는 것#4(2015.9.23. 이 아침에)
(4) 우리 개천(開天)사상과 중국학계의 다중(多重)증거법(證據法)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조상인 한인(桓因)씨의 서자 한웅(桓雄)씨(거발한)가 태백산 신단수아래에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받아 모시고 서쪽으로는 삼위산에서 동쪽으로는 태백산에 이르는 큰 나라를개천하였고(BC3898.10.3.), 최치원선생이 천부를 라-당에서 통용되던 당시의 글(契)로 풀이한 천부경에서 “本心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人”-본래 그것이 밝고 밝은 인본주의의 근본임을 밝혔으며, 그로부터 3천5백년을 지난 주나라 말에 공자가 교육한 예기(禮記)-대학(大學)편에서 “道在 明明 德在 新 民在 止於至善”의 3강령과 혈구지도(絜矩之道;로 착하게 사는 길을 이어 받았다. 여기서 한인씨의 서자라고 기록한 것에 대하여 근세조선에서 사용하던 서자의 뜻을 따라 여러가지 부정적인 해석이 있으나 우리 조상들이 믿던 마고, 궁희 등 여인 천하의 3신사상에 따르면 당연히 서자는 주권자인 한인씨의 생물학적 적장자가 아니라 삼신할머니의 아들인 서자만이 나라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으로 후에 후계자로 지정되는 태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천부경과 대학을 비교해보면 내용이 그 이름만 三才와 삼강(三綱)령으로 달리 부를 뿐 그 철리(哲理)와 뜻으로 보아 그 체용(體用)이 같으며, 그 원리는 배달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민족의 일관된 도리(一貫지之道)로 삼아온 국가경영철학이라 할 것이다. 천부삼재-三太極)의 개천설화가 후세사람들의 위작이나 역사왜곡인지 아니면 그것이 서경(書經)의 순전에 기록한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書經 虞書 舜典)” 동후(東后)조에 예물을 올리고 역(歷)과 도량형기(度量衡器)를 맞추었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고조선과 우순이 교류하면서 천부3인과 대학3강령도 서로 전수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천부사상은 파미르고원에서 모든 4대 강줄기가 시원하며, 천산(天山)과 천해(天海), 태백산(太白山)으로 동진(東進)(BC4000전후)하면서 이미 3태극(太極)사상도 상전(相傳)해왔을 것이고, 대학 3강령사상이 BC2000년경 기록인, 서경에 나오는 것으로 보면, 논어에 “신이호고(信而好古),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한 공자의 기록대로, 공자 이전에 이미 중원지방에도 전승된 것이 분명하다. 이런고로 천부인의 석삼극(三極=천지인)무진본과 도명(道明), 덕신(德新), 인륜지선(人倫止善))의 대학3강령이 서로 대칭되는 동방의 일관된 근본사상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논리적 심증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실증이 없는 한 그것이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실증(實證) 없이 그것이 역사기록이 아니라 위서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억지가 됨으로 중국의 실증사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증거방법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20세기 초부터 중국의 학자들이 역사의 지상(紙上)기록을 일단 의심하고 이 기록을 증명할 금문, 지하문물 등 二重證據, 三重證據, 五重證據法 등을 차례로 개발, 다중(多重)증거법으로 진실한 역사기록물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위서(僞書)나 왜곡논쟁을 불식시키는 고대문헌 증거방법론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시카고대학 중 어문학과에서 공자(孔子) 이전(以前)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하이기도 한 Edward Shaughnessy(夏含夷)저 2014년 8월, 중문과 영문으로 된 “Evidence2+Evdence3=Evidence5=Evidence=One(Double Evidence Plus Evidence Equals Quintuple Evdence If and Only Evidence Is Unitary)-Further Remarks on the Evidential Method for Scholarship on Ancient China”라는 증거법에 대한 종합적인 소개서는 위에서 보다시피 이 책의 긴 제목에서 이미 그 논지를 요약하고 있는바, 다시 부연 설명하면 역사기록 등 고대문헌을 해석함에 있어, 적어도 그 기록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이와 일치하는 과학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종이나, 흙(土), 도자기(陶), 목, 죽(木竹), 돌(石), 금속(金), 비단(錦)위에 쓰여 진 역사(歷史), 글과 문장(契, 文)은 적어도 들어난(出土) 유물과 유적, 그리고 또 다른 동종의 기록이나, 이웃나라의 역사, 글, 문헌이나 인방(隣邦)간 교류의 징표들로 그것이 진실한 기록이라는 다중(多重)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서3경과 대학에 대한 기록은 쉽게 다중증거법으로 그 사실(史實)을 증명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나, 고기의 천부인3개라든가, 최치원(崔致遠)선생의 “鸞朗碑序曰國有玄妙之道曰風流說敎之源備祥仙史實乃包含三敎儒佛仙接化群生”라는 삼국사기 기록이 말하는 천부경존재에 대한 다중증거로는 무엇 무엇이 있을까? 필자가 3차례나 확인한 경상남도 남해, 금산(錦山)정상 단군사당에서 남쪽 바다가로 내려오는 길, 2부 능선에 위치한 널어 바위자락 우리 고전(古篆)자와 그림, 천지인을 표하는 工자와 수례 위, 대인상(大人像)은 한웅이 관경하며 천부경을 설(說)했다는 고기를 2중 증거 한 것이며(현재 경상남도 기념물지정 됨), 서경(書經), 역경(易經)이나 대학(大學), 논어(論語) 등을 3중, 5중증거법(Quintuple Evdence)으로 증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웅천왕이 신지인 현덕으로 하여금 천부3인(印)을 널리 알릴 방안을 찾게 하였고, 결국 신지가 사슴발자국(鹿圖)을 보고 글(契)로 만들었으며, 성춘령, 묘향산, 남해에 그 고전(古篆=옛 도장 글자)자로 음각하고, 후에 최 치원선생이 진서(眞書=뜻글)-81자로 번각(飜刻)하여 전한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