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선하게 산다는 것 #5(2015.10.3. 칼럼)
(5)국가의 경영철학(經營哲學)과 지도자의 천하관(天下觀)-i)
인간은 사회적(社會的)동물이다라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가 말했다. 이 말은 “사람이 정치적 동물”이는 것이지만 어찌 그것이 사람뿐이겠는가-다른 많은 동물이나 식물이 단순히 개체보존의 본능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끼리끼리 어울려 집단을 이루고, 일정한 룰에 따라 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풀꽃도 끼리끼리 피고, 아프리카에서 얼룩말도 집단을 이루가 사는가 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오랜 역사책 중 하나인인 박제상(AD363-418)의 징심록(澄心錄)은 빙하기이후 남은 소수의 인간들인 마고, 궁희, 소희 3신(神)과 4천인(天人)-황궁, 청궁씨, 백소, 흑소씨에 대한 기록이 하늘, 신, 사람간의 관계와 철학을 잘 전해주고 있다. 박제상이 징심록를 짓고 그 아들 백결선생이 금척지를 지어 징심록 전집이 대대로 그 자손에게 전하고, 세종 때 후에 생육신 중 하나로 불리던 김시습이 그 징심록을 읽고 지은 징심록추기를 합하여 지라 하였다 금척은 왕의 징표로 박혁거세가 소지했었다고 하였고 이성계는 남해 금산에서 꿈에 그것(금척)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박제상(삼국유사에서는 김 씨로 표기)은 당대의 엘리트요 충신이던 것을 여러 역사기록에서 볼 수 있으나 그가 지은 징심록은 박금씨가 광복 후, 북한 땅에 그것을 두고와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고, 그가 기억하고 있던 것을 복원한 상, 중 하교 중에서 상교 제1지인 부도지만이 근세 한자로 기록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부도(符都)와 김시습의 징심록추기, 그리고 박금씨의 요정징심록연의(要正澄心錄演義)에 징심록대강이 전해지고 있으나세종대왕이 그 후손인, 영해 박씨 종손을 서울에 불러올려 중용하고, 김시습이 대왕의 훈미정음창제에 그것이 기본이 되었다고 추기에 썼으니, 실록엔 그런 기록이 없다 해도 박계손이 세종의 유지로 단종시 병조판서로 등용된 것은 징심록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만하다
부도지는 빙하기에서 생존한 현생인류가 BC10,000년경까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파밀고원으로 추정)에 부도(符都)라는 이상향을 만들어 천(天)부(符)의 이치를 따라 살다가 인구와 환경의 변화로 4개 부족(인구 1만 내지 1만 5천)중, 황궁은 북쪽, 백소는 서쪽, 청궁은 동쪽, 흑소는 남쪽으로 끼리끼리 떠나면서도 천부를 모시고(奉受天符) 부도(符都)를 복건(復建)한다는 마고(麻姑)복본(複本)을 맹서(盟誓)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도의 존재와 그 기록의 사실여부를 증명하려면 황궁씨의 천산이주후인 유인, 한인, 한웅씨의 유적, 유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BC8,000-BC2000년)의 전신(前身)이 부도문화라는 유물, 유적이 마고성지역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는 천부 즉 그 정치절학-천하관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할 것이다. 작년(2014) 가을 북경 수드(首都)박물관에서 고대 중국옥문화전시회가 열렸고, 그 전시품 중, 필자가 확인한 약3cmx4cmx2cm 크기의 아름답고 방금 조각한 것 같던 진초록 옥저용(玉猪龍에 홍산출토(만 년 전 추정)이라고 표기된 것을 보고 환희했으며 그동안 중국정부가 홍산문화에 대한 공개를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것을 확인해주는 옥전시도록圖錄을 구입해 왔다. 만약 파밀과 천산지역에서 흘러온 문화교류의 흔적인 유물 유적의 원류(源流)를 발견한다면 그 당시 오랜 기간 전지구의 혹독한 빙하기를 오직 마고 일족이 살아남고 그들 후 손들이 지켜온 부도의 모습과 그 부도를 이끌어 온 천부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 또는 단군조선(BC2333-BC194)이 동아시아 역사에 처음으로 한(漢)족의 나라라고 자칭하는 한 고조 유방이 개국한 한(漢=BC206-AD220)지역망명객 위만에게 속아, 나라를 내주고 마한으로 밀려간 후, 천손(天孫), 봉수천부(奉受天符), 부도복본(複本)이라는 민족철학, 홍익익간의 천하관이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갔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말, 후3국시대인 52대 효공왕(897-912)의 후계문제로 국론이 분분할 때 문현(박제상 14세손)공이 “신라입국(立國)의 근본이 부도(符都)를 복건(復建)하는 데 있다며, 고조선은 사해(四海)의 공도(公都)요 단씨(檀氏)의 후예(後裔)는 그 심부름꾼”이다라고 주장, 결국 박혁거세의 종손-신덕왕(912-917)을 세우는데, 이것이 우리 민족사(民族史)상 마지막 전통적천하관을 관철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크게 동방의 대동, 서방의 박애, 중방의 이슬람 등 세개의 전통=천하관이 충돌을 하며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