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람이 되고 그리고 나서 지도자가 되어야한다(2012.5.10)
주자가 다시 쓴 대학 서문에 “총명하고 예지가 있어 능히 그 본성을 발휘하는 자가 나오면 하늘이 명하여 군(君), 사(師)가 되게 한다.”고 하여 대통령같은 지도자는 예지가 뛰어난 총명한자여야 하며 곧 하늘이 불러 준다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가 되려면 밝은 지혜=예지(叡智)를 갖추어 총명하고, 하늘을 대신해서 국민이 그를 대통령이 되도록 뽑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은 첫째, 객관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이끌고 갈만한 목표가 뚜렷하고 그 예지와 총명함이 검증된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 그것을 판단하는 국민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기의 욕심을 버리는 선량한 국민들이어야 제대로 한나라의 훌륭한 대통령이 나온다는 말이 된다. 과연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런 과정을 거쳐 부끄럽지 않게 태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게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국민들의 정직한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쉽지 않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래도 민선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 누구를 보아도 그 세대를 대표하는 총명한 사람도 아니고 발군(拔群)의 밝은 지혜를 가진 지도자라고 볼 수도 없으며 그들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국민들도 국가발전과 민족의 번영만을 바라며 선거에 참여하였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그들의 통치기간에 갖은 추태, 불법, 무능, 폭거 등 헤아릴 수 없는 잘 못들이 그들을 뽑은 국민들도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었다.
먼저 김영삼과 김대중을 보자. 그들이 국민 중에서 중간이나 가는 총명함을 갖추었으며 밝은 지혜는 그만두고 술수와 더러운 꾀가 시정의 모리배에 비하여 덜했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의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의 정도는 어떠했으며 그의 예의와 겸양의 정도가 예지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물 안 인사(人事)와 돌아가며 노는 인사정책으로부터 친 인척과 측근 인사들의 천하(天下)위가(爲家)하는 못된 현상을 자초한 이명박 대통령의 예지와 총명함의 정도는 무엇으로 점수를 줄 것인가? 이렇게 슬쩍 보기만 해도 “그냥 보통 사람, 좋은 사람”은 될 지언 정, 위에서 본 대학 서문에서 말하는 “천명(天命)”을 받아 국민을 통치하고 나라를 경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아닌가? 결국, 멀리서 우리가 보면 바로 눈앞만 바라보고(근시안), 뜨거운 솥에 콩 볶이듯 떠밀리고(무뇌한), 조금이라도 내게 떨어지는 게 없나 두리번거리며, 또 기회는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투표하는 이들, 이 우중(愚衆) 그 자체가 우리 동족인 국민들이 아닌지, 그 모든 책임을 저야 할 것이 아닌지?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제7위의 무역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못 살고 가장 자유롭지 못한 나라, 창피한 나라 북한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저들에게서 무엇을 이익 볼 수 있을까 두리번대며 줄을 대는 종북주의자들의 실상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도 모르고 있다. 민간인 출신이라 자부하는 전 대통통령 김영삼은 대통령시절의 실정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금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칠푼이”이라며 한번 사자를 잡아보라고 토끼를 자청한 김문수지사에게 악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총명하거나 예지라고는 찾을 수 없는 멍텅구리를 대통령으로 안친 것 뿐, 아니라, 아직도 자기가 밝은 지혜가 있다고 믿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자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있는 우리들도 꼴사납다.
이제 몇 달이 지나가면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그 대통령은 가난한 독제=북한식이 아닌 대한민국체제로의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다해야 하고 천명(국민의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지고 있다. 우리 한민족이 선진 대한민국을 구가하게 될 21세기의 입구에서 좌절해서는 안 되는 민족의 절실함을 오는 대선에서 만천하에 알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늘을 대신해서 국가와 민족을 바른 길로 이끌어갈 총명하고 예지가 넘치는 지도자, 검증이 된 지도자, 이미 훌륭한 사람이 된 지도자를 사심 없이 용감하게 추대해야 하는 한민족의 지상명령을 잊을 수야!
<성균지의 가고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