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회와 더 멀어진 ‘민주평통’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는 고국에서는 각급 의회의원과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에 기여하는 각계의 직능단체에서 위촉된 대표들로 구성되는 헌법기관이며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민의 통일의식을 수렴, 대통령에 건의하는 통일관계최고자문기관이었다. 그것은 비민주적 탄생의 원죄에도 불구하고 개정헌법에 따라 새롭게 재탄생하였음으로 북한의 대칭되는 단체와 공존하며, 때로는 통일을 향해 헌법논쟁을 하고 또 협력해야하는 대칭성과 출신주민이나 소속 단체의 대표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헌법상 목적과 그 위상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평통은 위원들의 활동을 돕고 그 의견을 종합하여 의장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보조역할을 하는 사무처나 총영사관 밑에 스스로 들어감으로서 본연의 권위와 직무를 저버리고 정부여당의 시녀같이 행동해 왔다. 그것은 일반 행정(대통령-통일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자문회의-일종의 Congress-임에도 불구하고, 위원들과 동격의 한 표일 수밖에 없는 의장-대통령이나 수석부의장의 수족(手足)이요 앞 자비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불합리는 민족의 중요한 구성원인 해외동포들로 구성된 지역협의회 위원들과 협의회장선임과정에서도 동포사회와 거리가 먼 청와대와 연줄을 대서, 그들이 대표해야할 동포사회와는 동떨어진 인사를 지명한 데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태생적으로 부적절했던 평통의 전신인 통대를 들먹이며 대표성을 상실한 이 단체의 폐지 여론까지 대두 된지 오래다. 특히 노무현정부의 코드인사가 해외협의회까지 미치면서 대한민국헌법과 거주국인 미국제도에 합치하는 자유민주주의 방식의 통일의식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 대거 진입했는가하면 13기에는 현지사정을 반영한다고 공관장과 현지 인선위원회의 추천까지 받고도 이를 무시하는 방만한 코드인사를 자행하여 동포사회와 더욱 멀어지는 우를 범하였다.
우리가 사는 시카고와 해외에서 한인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LA의 경우, 총영사관과 인선위원회를 구성, 추천한 복수의 회장후보가 탈락하고 의외의 인물이 낙하산으로 내려온 일이라 던지, 위원으로 추천되지도 않은 인사를 임명한 경우는 노정부-코드인사의 극치를 보였다. 노무현정부의 편파적 무리수를 많이 보아온 우리로서는 크게 놀랄 것도 없지만 무슨 그럴듯한 권한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월급 받는 자리도 아닌 지역협의회장 자리까지 중앙에서 낙하시키는지 그 내력은 알고도 모를 일이다. 청와대는 성화에 못 이겨서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동포사회와 통일문제에 헌신할 ‘봉사자를 얻느냐 못 하느냐?, 평통을 이 지역사회에 바로 세우느냐 못하느냐?‘하는 일이 된다. 코드나 연줄을 댈 자리가 따로 있고 현지의견을 무시할 실력자라도 청탁할 자리가 따로 있지 지역협의회장 자리는 “아니올시다.”이다. 동포들의 태반은 평통의 존재자체도 반대하고, 또 다른 반은 현지사회의 의견을 무시하는 총영사관의 추천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그 나머지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노무현 코드인사는 물론 반대다. 시카고의 경우 버릇처럼 본인도 몰랐다 하지만 연줄을 대지 않았다면 어찌 알고 추천된 사람을 저치고 회장으로 뽑혔을까? 그래서 지금 LA와 오랜지 카운티 에서는 동포대표단체인 한인회추천이 무시되고 회장과 위원선임도 부당하다며 위원직사표를 내는 등,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시카고에서도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 보다도 동포사회로부터 멀어져 가고 한국 국민의 세금과 동포사회인사인 위원들의 회비로 충당하는 평통운영이 자유민주주의적 평화통일에 기여할 수 없다면 이는 백해무익으로 해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영양가 없는 단체로 탈락한 13기 시카고협의회가 기사회생 하려면, 잘 못된 절차를 치유하려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면, 빈 감투를 탐한 부끄러움을 벗으려면, 이제라도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조국의 자유민주주의적 남북통일을 위해 동포사회가 감당해야할 역할을 동포사회와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비웃어주고 멀리하고 싶지만 그래도 고국이 동포사회와 함께하겠다는 제도적 장치로 마련한 해외평통을 폐지하기보다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독려, 참여하는 아량과 민족애를 베풀어주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