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우는가? 내가 우는가?
시카고에도 무덥던 여름이 어느새 지났나 했더니 요 며칠 새에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가을바람이 제법 고향에나 온 듯, 긴 소매 속을 파고듭니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라 인기척도 없이 조용한 이 밤, 풀 벌래 소리 들으며 뒤뜰, 잔디밭위로 불숙 나온 넓은 포치를 걸으며 중천에 뜬, 좀 비어있는 구석이 남은 추석 전전날 밝은 달, 그 밝디 밝던 달과 닮은, 비스듬이 둥근 달을 바라봅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그렇게 들떠있던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도 참 가난하고, 가지고 놀 것이라고는 친구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그래도 동리 앞, 모래밭에 나서면, 웃고, 소리치고, 밀치고, 뛰어놀던 그 어린 시절이, 엇 그제 같이 눈앞에 서언 합니다. 오늘은 눈부시게 발전한 우리모교의 자랑거리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보고 싶은 동문들의 대단한 활약상을 함께 펼쳐보면서, 지난번 동문들과 함께 <태풍성대>를 외치던 감격을 새기면서, 더 크게 발전할 모교의 앞날을 <명륜춘추>에 상량해보리라 생각하며 밤바람을 쏘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 마음 따라 글이 나와 주나요? 지나가는 구름과 반대방향으로 달려만 가는 하얀 달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마음은 고향을 향해, 이제는 까마득하게 잊혀만 가던 옛 고향의 어리디 어린 친구들의 모습, 거기에 저만치서서 미소 지으시는 새 각시-어머님모습이 어린 내 마음 붙들고 놓지를 않습니다. 어렵던 시절을 겨우겨우 다 보내고, 조국근대화를 부르짖으며 몸부림을 치던 그런 시절, 더 잘사는 그런 세월 만들자고, 저만치 하늘과 땅 사이같이 멀게만 느껴지던 타향, 미국에 와서 외로워 서럽고, 고댄 세월 보내었더니, 아- 어느새 머리는 희고, 멀리 간 그리운 친구들 맛날 길이 없구나. 달은 구름 가듯 서쪽으로 가고, 나는 꿈을 꾸듯 동쪽 고향, 향에 달려가네. 옥수수 밭, 끝없는 어둑한 들판을 뚫고 달려가는 하얀 말 한 마리, 목이 타면 냇물 가에 우뚝 서서 물을 흠뻑 마시고, 하늘을 향해 히잉하며 속 시원하게 표호라도 하겠지. 열심히 뛰는 동문들 추석 잘 보내세요.
2015년 추석이 오는데, 시카고에서
림관헌(법률 56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