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옳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201312.2.림관헌 칼럼)
세상에는 나만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같은 배에 타면 세상사람 모두가 자기 배만 따라와야 옳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막 무가네로 저질러지는 폭력행위가 테러이며 2013.4.15일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결승점 가까이에서 두 개의 폭탄을 터트려 많은 사상자를 낸 러시아출신 체첸이민자 형제가 저질은 테러도 이런 것이라 하겠다. 2001년 9.11테러 이후에 많은 테러행위가 있었는데 미국과 유럽, 인도와 동남아, 러시아와 중동, 그리고 중국에서 일어난 불법적인 폭력수단을 쓴 테러의 대부분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과격한 폭력조직인 일부 지하드에 의하여 저질러졌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싸움은 일천년의 길고 긴 투쟁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같은 창조주(여호아와 알라)를 믿는 이들 두 인류 집단 간에 성전(cursedness vs jihad)이라 불으며 자기편만이 옳다고 목숨을 걸었던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선 종교이야기는 하지말자고 한다. 종교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어서 여럿이 모이면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도 그 깨 닳고 믿는 바가 서로 그 색깔과 정도가 달라서 그 모임을 깨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종교는 그 집안이나 한 집단 내에서만 논의되고 실천할 일이지 사회생활에 강제로 적용하려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웃이나 이웃나라도 자기들 믿음이나 생활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게 되면 세상에 평화는 없게 되며 결국 그것은 세계 보편적 종교로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캐도릭교회(Communion of Catholic Churches)는 보편적 또는 일반적인 교회의 의미로 서방세계의 보편적 종교라는 의미로 쓰여 졌는데 그것은 예수를 야훼하나님의 메시아로 보지 않는 유태교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수긍이 가는 그런 종교라는 의미로 쓰여 졌었다. 그럼으로 그것은 2000년간 서양의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종교로서 교회 간에 극단적인 이념 또는 신앙에 대한 대립은 없었다. 캐토릭신앙으로 통일되었던 로마교회나, 동방정교회, 아시리아정교 등 많은 전통이 포함되었으며, 메카의 하심가문(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보다 12세 위인 장자 이스마엘의 자손이라 주장)에서 태어난 모하메드가 AD610년 천사 가브리엘(지부릴)의 계시를 받고 “알라 외에는 신은 없다”고 선언 할 때 까지 서방세계의 유일한 보편적 교회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일신 야훼(아브라함의 적자, 이스마엘의 이복동생 이삭의 자손), 여호아(캐토릭)나 알라(아브라함의 서 장자/이스마엘/ 이삭보다 12세 연장/의 자손)는 다 같이 한국어로는 ‘하나님’으로 번역하여야 마땅한 동일 신이며 다만 갈라져 살아온 나라말에 따라 달리 불리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종교는 수많은 지구상의 다른 종교보다 극단적인 대립과 폭력을 교환하여 온 역사로 인해서 오늘날에도 서로 테러를 자행하고 그것을 같은 유일신의 이름으로 성전(聖戰)이라고 우기고 있다. 특히 이슬람극단주의에 뿌리인 일부 지하드구성원들은 지금도 9.11 뉴욕, 4.15 보스턴 등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을 포함하는 모든 고급 종교는 ‘사랑=자비’를 가장 큰 제1의 종지로 삼고, 그것들은 또한 모두 부당한 폭력을 금한다. 중세의 서방에서 가장 과학적인 견해를 기초로 개혁한 종교인 이슬람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유태교나 캐토릭을 능가하는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며, 그러기 때문에 미국형무소에서 개종(改宗)하였다고 하면 80%이상이 이슬람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런 이슬람교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자살폭탄으로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것도 성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해도, 동조도 할 수 없는 반 종교행위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물며 한 창조주 신과 한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유태교와 기독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들은 다면, 누가 그것을 수긍할 것인가? 물론 다른 방법으로 지금 자기나 자기의 형제들이 고통과 압박을 받고있다고 생각하는 적국에 대하여 복구(復仇)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래도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 성자(聖者)들의 가르침으로 믿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