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가는 한일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2013.11.30. 림관헌 칼럼 이 아침에)
한일양국은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며, 16세기까지는 복본(複本), 천음(天音-律呂), 천부삼인(天符三印) 등으로 불리는 동이(夷)족의 천명(天命)사상을 함께하는 삼한-한의 일족임을 부인할 수 없다. 조상들은 강을 따라 천산남로와 북로를 따라 동북아 대륙으로 이동 그 부족들이 남하하여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AD400년 경 부터 따로 나라형태를 가추며, 홍익인간을 목표로 하는 천손(天孫)임을 자부하며, 시간이 흐르고 경쟁하는 사이에 서로 경원시하고 이해가 달라졌지만 그래도 좋은 의미건, 나쁜 발상이건, 일선(一線)동근(同根)이라고 믿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 비방하고 질시하더라도 언어적으로 그리고 습관과 문화, 나아가서 생체적 DNA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AD391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왜와 백제의 신라침략을 막는 남정(南征)에서 패퇴한 진(辰)국의 왜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신라. 백제와 경계를 맞대고 가야지방에 하나의 사회문화를 이루고 살아온 삼한의 무리였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위(魏)서 한(韓)전이나 후한(後漢)서 동이열전에서 왜(倭)의 위치는 신라와 백제에 인접한 나라로 되어있고 바로 광개토대왕왜정벌 후 쓰여진, 송서(宋書-AD420-479)에는 왜의 위치가 바다 건너에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왜의 주류가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그때까지 미개지로 대륙의 분국으로 남아있던 선(先)도래인(渡來人)들의 소국들을 아우르며 고토인 가야지방과 삼한에 끈을 놓지 못하고 늘 복본=권토중래(捲土重來)의 꿈을 꾸어온 것이 아닐까? 송서 곳곳에는 왜로 불리는 집단의 수장이 모두 진(辰)국대장군이라 불러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던지 그 후, 백제가 망할 때 왜는 백제를 도와 백강에서 힘겹게 당나라와 싸웠고, 고구려가 망할 때, 발해가 망할 때 일부 호족(豪族)들이 섬으로 피난하여 후(後) 도래인(渡來人)으로서 일본을 흥왕하게 한 것은 일본 씨족 사에 남아있다. 그럼으로 임진왜란(AD1592년)도 풍신수길이 진국의 후손을 자처하는 천왕을 꼬드겨 삼한(三韓)일통(一統)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며 이미 너무 강대한 중원 땅-명의 거대함에 통일전쟁을 영원히 포기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임으로 19세기의 서구 식민주의를 본뜬 정한론(征韓論)이나 침략만행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할 것이다. 이것이 한일 간의 역사이며 지독히 잘못 전개된 역사의 상처요, 치유되고 다시 “복본“-근본으로 돌아가 글로벌시대의 이웃으로 자리매김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일본을 볼 때 19세기 말로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군국정부와 그 앞잡이들이 우리 국민과 미족의 역사에 끼친 패악(悖惡)질은 서구의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팔고, 미주 원주민과 버펄로 등 자연을 파멸한 것과,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것 등, 인류사의 패덕(悖德)과 큰 죄악(罪惡)에 견줄 만 하다. 2차 세계대전이후 이미 이것들은 모두 시대적 정의와 인류 보편적 이성(理性)에 의하여 심판이 내려지고, 가해자들과 그 후계세대가 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가 이렇고, 인류정의의 발로가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원죄를 떠안고 있는 신(新)일본이 그 죄를 미화하고 전범을 영웅으로, 신으로 제사하고, 침략과 학정을 부인하며 역사를 왜곡하여 피해자와 그 후손을 모독하고 다시 그런 패륜의 역사를 되풀이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으로 이웃을 핍박함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우리는 캐토릭교황청의 피해 원주민들에 대한 배려, 미국정부의 원주민학살과 흑인노예에 대한 역사재정립, 독일정부의 인종학살에 대한 사죄와 보상 등을 일본 정부와 국민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곧 일본이 명예로운 정상국가로 돌아가는 첩경임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필자는 과거의 왜인이나 현재의 일본인들이 나의 가장 가까운 혈통이며 좋은 이웃이라는 점에 한 번도 의심을 가져본 일이 없다. 그것은 오늘날 동아시아 연합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우리로서는 다시 색이고 다짐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