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 윤모 박사를 추모하며
고 이윤모 박사를 추모하며(6/6별세 6/23추모회)
어려운 시절 한국에서 자라, 환영해주는 이 없던 시카고에서 청춘을 불사른 언론인 이윤모 선생을 추모합니다.
1970년대 초, 시카고 한인사회가 언필칭 3천명이라 하던 시절, 하루 종일 헤매어도 한국사람 보기 힘들던 시절, 그래도 아미티지와 홀스테드길에 있던 학생관에 가면 젊은 학생, 늙은 학생들을 맛날 수 있던 시절, 그 시절에 한국일보 시카고지사가 김용환-이윤모라는 용감한 한인에 의하여 타자와 등사기로 신문이 탄생하였던 것을 누가 잊을 수 있을까? 잘 살이 보겠다는 이민자의 소박한 생각과는 달리 새로운 한인사회에도 소통과 문화가 필요하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진, 이들 동끼호테 같은 거상(巨象)의 의기투합이 미국 시카고 땅에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이으려는 한국의 언론이 척박한 불모지에 싹을 튼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그 당시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환경과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미국 땅에서 한 봄날에 갑자기 날아든 공병우타자기로 찍고 등사한 한 장짜리 신문을 받아 들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때는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이 누구인지, 신문이라는 걸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너무도 놀랍고 반가워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당시 클락 스트릿에 일본 상점이 있다는 소리도 있었고, 브로드위에 있던 일본 불교사원에 갔을 때 등사지에 철필(鐵筆)로 세로로 써내려간 기사로 쓴 소식지를 본 일은 있었지만 식자가 아닌 타자기로 찍은 신문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일보를 보고 있노라면 20년 긴 세월을 지키고 키어 온 이윤모 박사의 그 끈기, 돌아 온 것이 별로 없는 무관의 제왕이다가 떠나간 행자, 이박사를 추모합니다.
1990년 대 후반부터는 십 수만 명으로 늘어난 미 중서부의 재미한인들, 시카고에서 한인 정치력을 키우고, 소수의 단결된 목소리를 높혀야 우리가 두고 온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전공분야인 사회과학자로서의 지식과 역량을 다하며 우리 한인사회를 위하여 진력해 왔습니다. 먼저 이윤모박사는 권오현, 손예숙박사, 이차희, 박중구회장, 지원종, 제임스 송, 스티브 김 등,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미시민연합(KAC of MW.)을 창립하는 데 중심에 있었고, 미중서부지역한인유권자와 주류사회의 친한파 인사들과의 유대강화에 노력했습니다. 이 박사는 KAC의 비영리법인정관을 입안하고 등록에 성공하였으며, 마크 컥 미연방하원의원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미국의 집권여당인 부시행정부의 친한 인사인 콜린 파월 장관과 필자를 포함한 7명의 대표와 국무장관, 동아시아 담당차관보 케리, 입법부담당 케리 등 두 차관보, 국무부 한국데스크 담당, 마크 컥 하원의원이 참가한 연석회담에서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미국연방정부의 협조를 약속 받았었습니다. 9.11사태 이후, 초기에 보인 북한의 테러 비판은 미국으로 하여금 평양주재 영사관개설을 고려할 만큼 호감을 보였으며, 우리 미주 이산가족도 북한방문의 기회가 자연스럽게 가족상봉의 기회로 삼게 될 날이 올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로 북한이 테러집단과 한패가 되어가는 것을 감지했고 결국 저들과 함께 악의 축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우리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열정을 다시 추모하게 됩니다.
2007년인가 이 박사가 주정부에서 리타어 한 다음에는 전적으로 한인사회와 자신의 종교생활에 몰두하여 한인사회연구원을 우뚝 세워 후진들의 연구와 활동을 북돋아 주고 근자에 미국과 본국의 언론, 그리고 거기에 뒤질세라 따라나선 미주한인사회 잘못 된 언론이 그 사명과 전통을 잊고 헤메는 것을 안타까히 여기어 걱정도 많이 하고, 불편한 건강을 돌보지 않고 시카고 한국일보의 발전에 힘이 되겠다고 적극참여하기 시작하던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옵니다. 이제 떠날 때도 알리지 않고, 장례도 조용히 치른 이윤모 박사의 행장을 생각하니 생전에 더 맛나지 못한 무심을 후회하고 추모하는 마음 더 간절합니다.
오는 길이 그러하듯이 가는 길도 아름다기를 축원합니다.
2023.6.23.추모회를 맞아
전 KAC-MW 회장 림관헌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