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351고지를 다녀와서(2009.11.6.)
필자가 70년 고국을 떠날 때까지도 이곳 동해바다를 보지 못했지만 39년이 지나는 동안 그 많은 조국 방문을 통해서도 동쪽의 6.25전쟁 상흔이 그대로 녹슬어 있는 국방한계선을 방문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09. 10. 27. 서울 세종호텔에서 평화문제연구소와 독일 한스자이엘 재단 서울사무소가 주최하는 2009년 해외동포대표초청 통일세미나에 참석하고 그 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동해안의 분단현장인 고성군 남반부의 동북단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고 돌아올 기회를 가졌다. 6.25와 7.28휴전을 거치면서 이미 포성은 멈춰 5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민족상잔의 아픈 상흔은 무심한 파도 소리와 푸르게 자란 비무장지대의 울창한 숲 사이에서 피의 증기(蒸氣)로 피어오르고 미쳐 흙으로 덮이지 아니한 젊은 함성이 산발을 한 하얀 갈대사이에서 맴도는 듯 가슴이 무겁다. 옛날 고성군은 북쪽의 고성읍과 남쪽의 거진읍을 중심으로 두 쪽으로 갈라져 금강산과 화진포의 명산대천으로 대표되는 명승지가 펼쳐지는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이 머물렀다는 별장 “고성의 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바닷가나 산자락 길을 따라 설치되어있는 철조망과 군데군데 준비해 놓은 탱크 저지선은 자주보이는 군영과 군대의 위장 색의 트럭들이 긴장감을 주고 곳곳에 서있는 출입금지의 엄중한 경고판들이 우리를 주눅이 들게 하였다. 민간인 통제선의 약자일 것 같은 민통선을 사이에 두고 더 올라가면 남북 4킬로미터 폭의 DMZ가 있고 그 남단과 북단에 양 적대군의 GP와 남북의 두 전망대 건물이 멀리 아스라이 대치하고 서있다. 금강산 남측출입국사무소 건물을 지나 헌병의 검문을 마치고 남쪽 통일전망대 길로 접어들어 금강산 쪽으로 올라가니 꽤 넓은 주차장에는 안보현장을 찾아 나선 우리일행 외에도 관광을 온 듯 남녘동포들과 중국인 민간인들이 이 긴장의 현장을 나들이 하고 있었다. 우리는 짤막한 영상을 통해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멀리 북서쪽으로 건너다보이는 금강산 비로봉과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해금강 남단의 섬들을 보고 북 인민군 GP와 전망대도 보면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던 351고지를 살펴보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어와 공격의 요지인 351고지는 53년 휴전을 1년 앞두고 2차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인민군을 물리치고 고지를 확보한 후 인민군의 치밀한 대공세로 3차전에서 다시 침탈당하고 4차 5차 접전을 하는 동안 피아에 수많은 전사자와 영웅을 만들면서 결국 인민군이 차지한 체 휴전을 맺게 되었다. 원래 14미터 또는 4미터가 더 높았었다는 이 고지는 1년여에 거친 치열한 전투기간 동안 한미공군의 폭격과 미 해군의 함포사격에 의하여 지형과 지고가 변경되고 결국 그 고도도 351미터로 낮아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얼마나 무섭게 변했으면 그곳 전투에 수차 투입된 한국군 5사단 장병들 까지도 예정된 고지공격로지형이 변하여 공격로을 변경했다는 전사(戰史)자료가 나올 판이니 그 때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 그곳에서 김일성에 의하여 많은 전쟁영웅이 만들어지고 우리 남한 군 전사에도 많은 영웅과 작전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포성이 멈추고 긴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김정일의 시찰을 통해 북한 선군정치의 강화와 북한 6.25전쟁역사인 “승리” 해설의 선전현장이 되고 있다고 한다. 조국의 위기를 맞아 6.25직전에는 군번 없는 서북청년단원과 강원도지역 애국청년 316명이 호림유격대를 조직, 그 대부분 대원들이 38선 이북의 적지에서 싸우다 산화하였으며 그들 중 살아 남은 전우들에 의하여 건립된 호림유격전적비가 서 있고 휴전 후 세운 “351고지전투전적비”와 “공군351고지전투지원작전기념비”가 남아있어 공산도당과 싸우다 간 전사들의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하다. 우리는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금강산비로봉을 멀리 보고 해금강과 351고지를 지척에서 보면서 동족이라 도와주어야 한다는 민족애 내지 인도주의를 내세우면서도 6.25의 잔인한 침공과 미군과 그 괴뢰정권을 몰아낸다며 동족을 혹독하게 살상하고 국토를 파괴한 북한 공산당의 잔당인 김정일 정권과 그 추종세력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이 치솟는다. 그러나 이런 민족의 상처도 이미 반세기가 넘어 흐릿한 기억속의 일이 되고 세상이 바뀌었으니 구원(舊怨)을 잊어야 하고 새로운 민족의 진로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우리의 도움을 숨겨, 핵무장을 하고 공갈을 치는 저들의 대처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강박을 받게 된다. 아! 끝없이 밀려왔다 달려가는 저 푸른 동해물결이 우리의 붉은 피를 끓게 하고, 수려한 금강산의 정기를 안은 저 높기만 한 푸르른 창공은 우리를 감싸주나니 호국의 영령들이어 영원한 조국의 앞날에 빛이 되어주소서.